22일(한국시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을 마친 뒤, 넬리 코다(23·미국)는 고진영(26)과 동반 플레이를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9타를 줄인 고진영은 합계 23언더파로 하타오카 나사(일본·22언더파)를 제치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여자 골프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 상금(150만 달러·17억8500만원)을 받은 고진영은 올 시즌 총상금 350만2161 달러(41억6000만원)를 기록했다. 이로써 그는 3년 연속 시즌 상금왕에 올랐다. 3시즌 연속 상금왕에 오른 선수는 2006~2008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이후 고진영이 처음이다.
지난 3월 고진영은 할머니를 잃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고진영은 귀국하지 못했고, 한동안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지난 8월엔 도쿄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공동 9위로 밀렸다. 지난 5월부터는 왼 손목 부상과 싸웠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선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1라운드를 치르며 통증 탓에 눈물을 흘렸다. 그의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영국)가 “이번이 전부가 아니다. 기권해도 좋다”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진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3라운드에서 7개 홀 연속 버디로 단번에 공동 선두에 나섰다. 아이언샷이 특히 돋보였다. 이번 대회 1라운드 9번 홀에서 그린을 놓친 그는 나머지 9개 홀과 이후 열린 54개 홀에서 완벽한 아이언 게임을 했다. 63홀 연속 그린에 적중한 것이다.
고진영의 코치인 이시우 프로는 “다운스윙의 일관성이 확실히 좋아졌다. 올림픽에서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으나 이후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거리를 욕심내지 않은 게 스윙머신이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진영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그린 구석에 꽂힌 핀을 무리하게 공략하지 않는다. 그린 적중률이 높은 이유다.
고진영은 최근 4경기에서 3승을 올렸다. 지난달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2라운드 이후 11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1~6월)엔 우승이 없었지만, 하반기(7~11월)에 5승을 쓸어담았다. 시즌 마지막 대회까지 코다와 경쟁한 끝에 승리한 고진영은 “코다보다 내가 조금 더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어느 해보다 감정 기복이 심해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 그래도 캐디, 매니저 등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브루커는 고진영이 LPGA 투어에서 거둔 12승 중 10승을 도왔다. 이번 시즌 도중 국내 훈련에서 안정적인 스윙 변화를 도운 이시우 코치, 멘털 관리를 맡은 정그린 코치, 성공적인 미국 정착을 도운 매니저 최수진씨도 고진영의 든든한 도우미들이다.
성공적인 한 시즌을 마친 고진영은 23일 귀국한다. 그는 “아직 내년 일정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당분간은 클럽을 멀리 놓고 골프를 잊을 것이다. 배 위에 감자튀김을 올려놓고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 크리스마스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