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달러당 114.89엔에 마감했다. 장중엔 114.97엔까지 떨어지며 엔화가치는 2017년 3월 14일 이후 가장 낮았다(환율 상승).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의 소매 판매·산업생산 지표가 호조를 보이며 달러화가 강세를 이어가고 미국 국채수익률(금리)이 오르며 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유럽 등 주요국과 반대로 가는 통화정책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금리 인상을 준비하는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초완화 통화 정책’을 유지하는 탓에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펼쳤던 돈 풀기 행보를 거둬들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3일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실시를 발표했다. 영국 영란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지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이런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초완화 통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Fed의 테이퍼링 발표 직후인 지난 4일 “유럽·미국과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며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아타나시오스 밤바키디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외환 전략 이사는 “Fed는 내년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은행은 내년에도 제로금리에 머물러 있을 확률이 높다”며 “이러한 정책 차이로 인해 엔화가치는 올해 말 달러당 116엔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은행이 통화완화 정책을 고수하는 건 여전히 꿈쩍하지 않는 물가 때문이다. 미국(6.2%)과 유로존(4.1%), 한국(3.2%) 등 주요국 물가가 치솟고 있지만, 일본의 물가만 ‘나 홀로 0%’대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의 3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우려보다 디플레이션 탈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