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상회담 바이든·시진핑 ‘대만 충돌’

중앙일보

입력 2021.11.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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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16일(한국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미·중 정상회담이다. 두 정상은 대만 문제에 있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했으나 해법을 놓고선 팽팽하게 맞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6일(한국시간) 영상으로 진행된 첫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백악관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해 왔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의 현상 변경엔 반대한다”며 “대만해협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시 주석은 “대만 당국이 ‘미국에 기대 독립을 도모하고’, 미국 일부 인사가 ‘대만으로 중국을 제어’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이 추세는 매우 위험한 불장난으로, 불장난하는 자는 스스로 타 죽는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완화자필자분(玩火者必自焚)’이라는 관용어로 ‘자업자득’을 뜻한다. 관용어의 비유적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대만 상황을 감안하면 과격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우리는 인내심이 있지만, 최대 성의와 최대 노력으로 평화통일을 원하지만 만일 ‘대만 독립’ 분열 세력이 도발하고,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어쩔 수 없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대만 문제의 진정한 현상과 하나의 중국 원칙의 핵심은 세계에는 단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담 상황을 잘 아는 미국 측 관계자는 두 정상이 미리 준비한 발언록에 구애받지 않고 발언했으며, 대만 문제를 놓고는 예정한 것 이상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문제의 현상 변경, 즉 무력에 의한 통일을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시 주석은 대만 측의 태도에 따라 무력 통일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바이든 “홍콩 등 인권침해 우려” 시진핑 “중국 주권 수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1층 동대청에 마련된 화상 회담장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두 정상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회담을 시작했으나 대만 문제 등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중국의 체제 전환을 추구하지 않으며, 동맹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반대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과 충돌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새로운 시기에 중·미는 공존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며 “첫째는 상호 존중, 둘째는 평화 공존, 셋째는 협력 및 상생”이라며 “지구는 중·미가 함께 발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 제로섬 게임을 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분의 휴식을 제외하고 전·후반 194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대만과 신장·티베트·홍콩의 인권 침해 우려, 불공정한 경제 관행, 남중국해와 항행의 자유 등 문제를 제기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시 주석과 의견을 나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회담은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10개월 만에 처음 열렸다. 두 정상은 그동안 두 차례 통화했지만 회담 수준은 아니었다.
 
미 당국자는 “전반적으로 각자 할 말을 하고, 의견이 일치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막론하고 솔직히 대화했다”고 밝혔다. “결과를 기대하는 회담이 아니다”는 백악관 예고대로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은 없었다.
 
바이든 “충돌 막을 가드레일 만들어야”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중국과 미국 지도자로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양국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책임”이라며 “상식적인 가드레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무역 및 경제 관행으로부터 미국 노동자와 산업을 보호할 필요성을 분명히 밝혔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논의하고, 이 지역 번영에 있어 항해와 항공의 자유도 강조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이는 강압적 태도를 지적할 때 미국이 꺼내는 표현이다.
 
시 주석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중국의 국익을 강조했다. 홍콩·신장·인권·남중국해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은 채 “갈등과 민감한 문제를 건설적인 방식으로 관리·통제해 미·중 관계가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은 자신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며 “미국이 관련 문제를 반드시 신중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와 관련해선 “미·중 경제 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 윈윈으로, 비즈니스 장에서는 비즈니스를 말해야지 미·중 경제문제를 정치화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시 주석, 바이든에 “오랜 친구 봐 기뻐”
 
정상회담은 초반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부통령일 때 당시 시 부주석과 “엄청나게 많은 시간 대화했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바이든은 시 주석에게 “당신은 세계 주요 리더”라면서 “우리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를 만나 매우 기쁘다”며 말문을 열었다.
 
미 당국자는 “정상회담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다”면서 “서로 존중하면서도 솔직하고 직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두 정상은 사전 준비된 원고와 의제 순서에 의존하지 않고 주제를 옮겨다니며 토론했고, 상대방이 좀 전에 한 말을 인용해 반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한반도 정세도 논의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 기자 브리핑에서 중앙일보 기자의 질문에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핵, 한반도 정세 등 기타 공동 관심의 국제·지역 문제에 의견을 교환했다”는 신화사 발표를 반복했을 뿐 “추가로 밝힐 내용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번 회담으로 양국 긴장이 좀 완화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 당국자는 “긴장 완화가 목적이 아니라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상황의 개선 여부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열린 이번 회담은 공동 발표문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중국은 회담 종료 후 3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신화통신과 CC-TV 등 관영 매체를 통해 시 주석의 발언 내용을 중심으로 회담 결과를 속속 공개했다. 회담 후 양측 조율을 거친 뒤 최소 수 시간 후 결과를 발표하는 보통의 정상회담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최근 중국은 중요한 미·중 회담 직후 이번처럼 신속하게 결과를 발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외교가에서는 ‘내러티브(narrative·사안에 대해 특정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를 선점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미국 측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등이 참석했다. 중국 측에서는 류허(劉鶴) 경제부총리, 딩쉐샹(丁薛祥) 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楊潔篪) 중앙외사위원회판공실 주임,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셰펑(謝鋒) 미주·정책 담당 부부장(차관) 등이 배석했다.
 
양 진영의 분위기는 대조적이었다. 미국 측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 바로 옆에 있는 회의실인 루스벨트룸에 자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테이블 상석에 앉고 테이블 주변으로 참모진이 앉는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반면에 중국 측은 중대 국가회의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내 동대청(東大廳)에서 긴 테이블을 설치해 둔 채 기자회견을 하는 듯한 형태로 회담에 임했다. 시 주석이 가운데 앉고 좌우로 참모들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