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15일 민간 싱크탱크 니어재단이 개최한 ‘새로 그리는 다음 10년, 한국의 외교ㆍ안보 전략 지도’ 정책 세미나 기조 발제에서 “외교는 이제 경제 및 첨단 과학기술과 분리될 수 없고, 강력한 안보 태세도 같이 가는 통합된 역량, 즉 자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처럼 말했다.
미ㆍ중 패권 경쟁 속 '외교의 부활'
‘외교의 부활’은 국내의 저명한 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이 1년여 간 수차례의 발표와 토론을 벌인 결과물로, 이날 출간됐다. 구체적으로 ▲북핵 문제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간 안보 협의체) ▲글로벌 첨단 기술 공급망 ▲북한의 도발 대응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와 한ㆍ미 상호 운용성 ▲한ㆍ미 동맹의 대중국 견제 역할 ▲한ㆍ미 연합훈련의 복원 ▲중국 인권 문제 ▲미국 중거리 미사일 배치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개편 등을 주요 10개 과제로 꼽고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외교의 부활’은 이런 과제들을 ‘복합 과제’로 명명했다. 이슈 간 연계성이 크고,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北 중심' 외교관서 벗어난 접근
윤병세 전 장관도 기조 발제에서 “경쟁과 충돌 요인이 증대하는 새로운 미ㆍ중 관계 속에서 한국이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maneuvering)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진실의 순간이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는 동맹을 활용하고, 유사 입장국들과 연합하고,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우리 나름의 지렛대를 자강 차원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집필진의 주요 발언.
韓 직면한 '외교의 부활', 전문가 진단은
=“‘외교의 부활’은 미ㆍ중 간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공존하며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결론은 동맹을 통해 미국을 믿고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과연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어려울 때 미국이 완전한 ‘해결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이 상존한다. 미국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고민해 어떤 분야에서 힘을 키워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 제기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적으로 가장 양분화돼 있다. 이를 좁히려면 북한의 실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북한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끝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국제 문제와 대외 환경을 중심으로 북한 문제도 풀어가야 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내년이 한ㆍ중 수교 30주년인데, 우리는 여전히 1992년 수교 당시의 프레임워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중국이 중요하고, 중국의 시장은 지속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의 압박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에 집중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소비재 수입에 의존하는 등 중국 시장 진출 전략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제 중국을 현실적으로 봐야 하며, 국익 극대화뿐 아니라 국익 손실 최소화도 중요한 외교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한ㆍ일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외교와 글로벌 외교는 한국 외교의 열린 전략적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일본을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으로 볼 게 아니라 도쿄를 축으로 워싱턴과 베이징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스스로를 묶어놔서는 안 된다. 미ㆍ중 간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한ㆍ일이 공유하는 전략적 이익은 크다. 이런 이익을 넓히고 공유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국제연대 기초한 자강" "국익 중심 외교"
또 한ㆍ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과 관계가 어그러져 있으니 대미 및 대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은 한ㆍ미 관계도 한ㆍ미ㆍ일 삼각 구도에서 파악하고, 한ㆍ일 관계가 좋지 않으면 중국이 한국을 가볍게 대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에서 보다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김기정 한국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한국은 어느덧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그 길목에서 정말 외교적 역량을 보여줘야 할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외교의 부활’이란 제목을 해석했다”고 말했다.
또 “외교에서 이념적 편 가르기에 대한 우려를 많이 공유하는데, 외교가 극단 대립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국제정치를 의리나 감성의 관점, 은혜를 주고받는 보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넘어섰을 때 국익 중심의 관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