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로 따지면 연기금은 지난해 6월부터 18개월째 매도세다. 금액은 31조9594억원. 이 기간 외국인(32조3903억원) 매도액과 맞먹는 수치다.
코스피 18개월간 32조원 매도
최근 투자자들이 연기금 등판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스피는 2900선에서 조정 양상인데 마땅한 매수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은 '팔자'를 이어가고 있고, 코로나19 이후 무섭게 주식을 쓸어담던 개인 투자자의 화력도 약해졌다. 오히려 개인은 이달 들어 1조3000억원 넘게 팔았다. 결국 기댈 언덕은 연기금뿐인 셈이다. 하지만 연기금은 등판을 계속 미루고 있다.
연기금이 많이 판 종목은 주로 대형주다. 지난달 이후 삼성전자를 6802억원어치 순매도했고 SK텔레콤(2211억원), 셀트리온(1918억원), LG전자(1199억원), 포스코(1181억원)도 많이 팔았다. 반면 카카오페이(3167억원)와 크래프톤(2869억원), 카카오뱅크(1373억원), 하이브(1326억원) 등 신규 상장 종목을 대거 사들였다.
"당분간 연기금 매수 전환 어려울 듯"
그런데 지난해 말 주가 급등으로 21.2%까지 치솟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지난 7월 말 19.5%로 낮아졌다. 지난 8월 이후에도 주식을 계속 팔아치운 데다, 증시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중은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연기금이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기계적으로 매도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채권값 하락(채권 금리 상승)이 국민연금의 매도 압력을 키웠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최근 채권값이 급락해 채권 평가금액 대비 주식 보유 비중이 높아졌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자산배분 관점에서 주식 비중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연기금이 본격적인 매수세로 태세를 전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돌입 등 증시 환경이 좋지 않아 당분간 연기금의 자금 유입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자금을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연기금 특성상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을 보수적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 실적을 토대로 산정한 코스피의 '트레일링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2배로, 지금 주식을 살 경우 국민연금이 안전마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투자운용팀장을 지낸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해외 주식 등 다른 자산이 우상향한다고 가정할 때, 코스피가 연고점 대비 20% 낮은 2700선으로 내려가면 국민연금이 매수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코스피는 2968.8에 마감, 지난 7월 6일 기록한 최고치(3305.21)보다 10.2% 하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