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중국 정부가 요소수 등에 대한 수출 검사 강화 조치를 고시한 지 18일이 지난 시점에 개최됐다. 그럼에도 정 장관이 회담 직전까지 요소수 부족 사태에 대해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대한 정부의 위험 감지 기능은 물론, 국내 경제안보 사안에 대한 대응 체계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외교부의 내부 보고 체계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앞서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21일 중국 공관을 통해 중국의 수출 검사 강화에 대한 우려가 접수됐다”며 “이후 즉각적으로 이런 우려 사항을 중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또 (외교부) 본부에서도 이를 접수해 관련 부처에도 이와 관련된 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즉각 대응했다"는데 장관은 "보고 못 받았다"
정 장관이 한·중 외교장관 회담 직전까지도 요소수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로 거론한 또 다른 이유는 ‘출장’이었다. 하지만 정 장관의 출장 일정은 중국에서 수출 강화 조치를 고시한 이후 15일이 흐른 지난달 26일 시작됐다. 각 주유소 등을 비롯해 요소수 판매처에서 재고가 동나고, 국내 시장에서 요소수 가격이 급등한 것 역시 정 장관의 출국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요소수 사태의 책임을 묻는 질의에 정 장관이 ‘관련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거나 ‘그 이전에 출국했다’고 답변한 것 자체가 책임 회피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주무 부처의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기보다 실무진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하기 급급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장관은 중국이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한 이유에 대해선 “중국 측에서 우리에게 설명하길 특정국을 겨냥한 조치는 아니라고 했다”며 “‘한국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게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에 저에게 보내온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과 달리 요소수 수입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선 이번 수출 검사 강화 조치가 사실상 ‘전면적인 수출 통제’에 해당했고, 나아가 공급망을 활용한 패권주의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중국은 사드 보복 때도 한번도 한국을 향한 보복조치라고 공식적으로 시인한 적이 없다.
종전선언 "한·미 의견 거의 일치했다"는데…
정 장관은 또 지난달 26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미 간 이견 가능성을 드러낸 종전선언의 순서·시기·조건에 대해선 “이는 그때 발언 당시에 한ㆍ미 간에 협의하고 있던 상황을 설명했던 것이고, 그 이후에 한ㆍ미간에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대로라면 한·미 간 종전선언 협의는 모두 마무리됐고,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입구라는 한국의 '선(先) 종전선언' 구상까지도 미국이 수용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정작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공식 지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이 언급한 ‘의견 일치’는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합의를 언급한 것일 뿐 핵심에 해당하는 종전선언 채택 시기와 전제 조건 등에 대해선 여전히 한·미 간 이견이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정 장관은 “무난하게 종전선언 합의에 도달할 수 있겠나”라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질의에 “그렇게까지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고,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이 미국과 한국의 합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종전선언의 또 다른 당사국인 북한이 협의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 양국의 논의만으론 종전선언 채택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