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구할 길 없다. 모든 게 싫다"
3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 숲 한쪽의 작은 편의점. 파란색 조끼를 입은 박모(22)씨가 판매대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손님이 물건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자 박씨가 “잠시만요”라며 금세 과자를 찾아준다. 박씨는 2019년 12월 고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사고를 당해 노동력을 상실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본인은 근로 능력이 있어서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조건부 수급자'이다. 지금은 서울강서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편의점 내일스토어 사업단'의 자활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재발성 무릎 뼈 탈골이 드물게 생기지만 평소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 편의점 일을 하면서 지난해 2월 디자인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선배와 잘 맞지 않아 지난해 8월 그만뒀다. 지난해 1~8월 30여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취직에 실패했고 구직을 포기했다.
차상위계층·기초수급자로 몰리는 2030
취업·창업이 어려워지자 2030 청년들이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 등의 극빈층 복지에 내몰리고 있다. 1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기초급자가 149만명에서 지난해 205만명으로 37.6% 늘었다. 경제난, 코로나19 확산, 선정기준 완화, 최저임금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같은 기간 20대가 36.6%, 30대는 60.9% 늘었다. 수급자 바로 위 저소득층인 차상위계층도 20대의 증가율이 35.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30대가 16.6%이며 60대 이상(13.5%)보다 높다. 차상위계층은 소득인정액(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이 기준 중위소득(국민 가구소득의 중윗값)의 50% 이하이다.
20대 자활근로 두배로, 일부는 대기
일부 자활센터에는 대기자가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권의 자활센터에는 200~300명의 대기자가 있고, 청년이 40~60명에 달한다. 이 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기자가 급증했는데, 상당수는 경제적 한계에 봉착한 듯하다"고 말했다.
40~50가지 일 전전, 끝내 수급자 신세
지난해 부모님 병원비(5000만원)를 빚 졌고, 본인은 심한 치주염에 시달렸다. 이씨는 좌절했고, 12월 주민센터를 찾아가 기초수급자가 됐다. 그는 반지하 원룸에서 산다. 부모 생활비, 적금 20만원을 빼고 월 5만원으로 산다. 최소 하루 한 끼는 라면이다. 휴대폰도 9년 된 것이다. 그는 "도배·타일 자격증을 따서 3년 안에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이씨는 "자활센터가 정부 평가를 잘 받으려고 매출 증대에만 집중한다. 직업적성 심층상담 같은 게 없다. 자립은 없고 사업만 있다"고 지적한다. 250개 자활센터 중 사례관리사가 있는 데가 90곳에 불과하다.
청년층의 주거급여 수급자도 늘어난다. 지난해 20, 30대 주거급여 수급자는 각각 약 12만5501명, 9만4528명이다. 2017년보다 각각 36%, 55.6% 늘었다. 60대 이상보다 작지만 증가 폭이 만만치 않다. 서울 강서구 등촌3동 주민센터 박병삼 복지팀장은 "2018년 10월 주거급여 대상자 선정 때 부모의 소득·재산을 따지지 않게 되면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청년층의 주거급여가 늘었다"고 말했다.
유튜버서 수급자 기준 정보 공유
전문가의 대안은
전문가들은 청년 빈곤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청년층 빈곤 추락은 양극화의 산물이다. 이들이 계층이동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자활센터가 기술교육이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할 게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심리 자활'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자활복지개발원 송현정 경영기획부 차장은 "대개 수급자 청년들은 어린시절 빈곤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커 정서적·사회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단기적 탈수급'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맞춤형 교육, 일 경험, 자산 형성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자활프로그램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주거권 증진운동을 벌이는 '민달팽이 유니온' 활동가 지수는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들이 코로나19 이후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쉽게 해고될 위치에 놓여 있다"며 "청년이 주거급여를 받아도 여전히 고시원에 사는 경우가 많다. 별도로 사는 20대 청년은 주거급여를 받기 힘든데, 이런 연령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범중 교수는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활 프로그램을 늘리고, 청년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꾸준히 파악하며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당장 취업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다. 청년에게 기본소득 형태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해 교육이나 주거비 등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소득과 재산(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의 30~50%에 못 미치는 빈곤층.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가 나오며 소득인정액이 30%(1인가구 54만8349원) 이하이면 넷 다 나오고 소득인정액이 올라갈수록 급여 종류가 계단식으로 줄어든다. 수급자 바로 위 저소득층이 차상위계층이다. 네 가지 급여는 없고 자활에 참여할 수 있다.
◇자활사업=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의 자립을 돕기 위해 근로 기회를 제공하고, 기능습득 지원과 취창업 정보를 제공하는것을 말한다. 창업 지원, 자산형성 지원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