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가에선 A씨의 퇴임 이유를 선거 때문이라고 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남경필 전 지사를 누르고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새로운 단체장이 취임하면 전임자가 임명한 기관장은 관례처럼 사직서를 낸다.
A씨 등 일부 기관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며 남았다. 오래가지 못했다. 대대적인 공공기관 감사 등에 손을 들었다. 이들이 나간 자리는 이 후보와 관련된 인물로 메워졌다. 한 산하기관 노조 관계자는 “산하 기관장의 자격이 언제부터 ‘능력’이 아닌 ‘인연’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이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단체장이 출마하면 기관장들이 따라서 사퇴한다. 논란이 제기되면 각 지자체는 “후임자를 빨리 찾겠다”고 해명한다. 적임자를 찾았다고 해도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걸림돌이다. 새 단체장 취임 후 A씨처럼 은근한 사퇴 압력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경기도의회 행정감사에서 오병권 경기지사 권한대행이 “정상적인 인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지방선거 이후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낙하산’ 비난에 지자체들은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며 인사청문회를 도입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부적격’ 판단을 내려도 단체장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단체장의 결정이 기관장의 운명은 물론, 사업까지 좌지우지하면서 공공기관은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다. “사장이 꼭 필요하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기관장 임명 보도자료를 찾아봤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적임(適任)자’다. ‘어떤 임무나 일에 알맞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단체장을 따라 사직서를 쓰는 기관장들을 보고 있자니 도민을 위해 뽑았다는 적임자가, 직무를 버린 ‘배임(背任)자’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