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론] 임기 6개월 남은 대통령의 ‘탄소중립 과속’

중앙일보

입력 2021.11.1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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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영국 글래스고에서 지난달 31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시작됐다. 유서 깊은 항구도시인 글래스고는 에너지 역사와 인연이 깊다. 제임스 와트가 250여 년 전 글래스고대에서 기계수리공으로 일하면서 증기기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산업사회로 들어가는 문을 연 곳이다. 탄소 기반 산업혁명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탄소와의 결별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린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을 없애서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데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 2019년에 가까스로 정점을 찍은 듯한 지구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격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COP26은 120여개 국이 모여 각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선심성 약속 남발해 국민에 부담
현실 깨닫고 원점서 재검토해야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9년 후에 지켜야 할 약속이다. 불과 두 달 전 2030년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26.3%에서 35%로 상향했는데 그때도 산업계가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 2차 전체회의에서 국가감축목표(NDC)를 뜬금없이 4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COP26 참석을 앞둔 대통령의 기대에 화답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번 글래스고 회의에서 40% 감축 계획을 발표해 국제사회에서 칭찬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뒷감당은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를 주도한 탄중위는 지난 5월 29일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로 출범했다. 그동안 탄중위 활동은 놀랍도록 민첩했다. 올 8월 초에 2050년 탄소 중립 시나리오 안 세 개를 발표했다. 지난달 18일에는 2050년 탄소 중립 시나리오 두 개와 함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안을 의결했다. 우리의 생활방식과 산업체계를 송두리째 바꿀 전인미답의 계획을 단 5개월 만에 뚝딱 해치웠다.


탄중위가 제시한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판타지 수준이다. 이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시설을 500GW 가까이 건설해야 하는데, 합계 인구가 5억 명인 유럽연합(EU) 27개국의 계획이 600GW 수준임을 고려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날씨가 좋아 500GW 시설이 모두 전기를 생산하면 우리나라 소비전력보다 서너 배는 많을 것이고, 이를 저장하려면 1000조원이 넘는 에너지저장설비(ESS)가 필요하다. 장마철에 대비하려면 더 많은 ESS가 필요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무탄소 신전원은 아직 기술성이 불확실하고, 이에 사용될 청정 수소를 경제성 있게 공급하는 방안은 오리무중이다. 산업 부문 감축안도 비현실적이다. 철강 산업에서 온실가스 95%를 줄이겠다는 것은 개발 중인 기술에 의존해 육식동물을 초식동물로 바꾸는 수술을 감행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원전 없는 탄소 중립이 어렵다는 데는 여러 나라가 공감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헝가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원전의 중요성을 인정했다고 한다. EU는 원전 발전 비중을 지금의 12%에서 2050년에 20%로 올릴 계획이다. 프랑스는 원전이 전력 생산의 70% 이상을 감당하고 있다. 미국은 기존 원전의 가동 연한을 60~80년으로 연장했고, 중소형 원전 건설도 서두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탄중위의 탈원전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탄소 중립 계획은 국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실천 계획이어야 한다. 기술적 가능성은 물론 일정·비용 등을 충분히 검증받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서는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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