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아파요" 타간 약 마약이었다…의사는 "불쌍해서 처방" [영상]

중앙일보

입력 2021.11.08 11:32

수정 2021.11.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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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로 통증을 호소하는 수법으로 병원에서 마약 성분이 함유된 진통제를 대량으로 처방받은 환자와 이를 알고도 약을 처방해준 의사가 무더기로 경찰에 검거됐다.

대전경찰청 마약수사대는 거짓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은 환자와 처방전을 발행해 준 의사 등 35명을 검거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성 진통제(펜타닐 성분)를 투약·판매한 26명과 이들에게 진통제를 처방한 의사 9명 등 35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하고 이 가운데 A씨(27)를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펜타닐은 합성마약으로 수술 후 환자나 암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다. 의사협회에서 “마지막으로 쓰는 약이다”라고 권고할 정도로 효과가 강한 진통제로 알려져 있다.
 

환각성분 높아 래퍼·대학생 등 적발

조사 결과 A씨 등 진통제를 처방받거나 판매한 26명은 2018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대전지역 병원을 찾아가 “전에 수술을 받았는데 몸이 아프다”며 허위로 통증을 호소한 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검거된 26명은 모두 20대로 진통제가 환각 성분이 높다는 것을 알고 의사에게 해당 약을 처방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는 래퍼 등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층과 대학생도 포함됐다. 
 
허위로 진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는 다량의 진통제를 처방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을 도용하거나 지인을 통해 처방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검거된 대전지역 의사 9명은 환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처방전을 내줬다.

대전경찰청 마약수사대는 거짓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은 환자와 처방전을 발행해 준 의사 등 35명을 검거했다. 신진호 기자

 
통상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때는 기존 처방전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일부 의사는 진단서와 수술 병력 등도 확인하지 않고 간단한 문진만으로 진통제를 처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소식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려지자 다른 지역에서 대전까지 원정 치료를 오기도 했다.


의사들 "젊은 애들이 불쌍해서 그랬다"

의사들은 경찰에서 “젊은 애들이 불쌍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환자들의 허위로 통증을 호소하는 것을 알고도 의사들이 진통제를 처방해준 것으로 판단했다.
 
진통제를 처방받은 사람 가운데는 SNS를 통해 되파는 수법으로 돈을 챙기기도 했다. 패치 형태의 진통제는 10개들이 1박스에 3만원(건강보험 처방)에 구입할 수 있다. 일부는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5배 정도의 가격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진통제를 판매했으며 패치 1매를 100만원에 거래한 사례도 적발됐다. 일부는 진통제를 불로 가열해 환각성을 높인 뒤 흡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경찰청 김재춘 마약수사대장이 허위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은 환자와 처방전을 발행해 준 의사 등 35명을 검거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경찰은 검거된 투약자와 가족들에게 치료를 권유했다. 투약자 26명 가운데 6명은 “치료를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겠다”며 입원을 결정했고 현재 입원 또는 통원 치료 중이다. 경찰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소 등과 협업을 통해 마약성 진통제 남용을 지속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식약처 등 관계기관에 의사가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할 경우 반드시 기존 처방내용을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법 개정도 요청할 예정이다.
 

경찰 "마약 중독성 강해 끊기 어려워" 

대전경찰청 김재준 마약범죄수사대장은 “마약류는 호기심이나 실수로 경험하더라도 중독성과 의존성이 생겨 끊기가 어렵고 끊더라도 뇌 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며 “마약류 유통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로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