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인도네시아, 장관 보좌관 그만두고 서울대 온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11.08 06:00

수정 2021.11.0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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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관정도서관 앞에 서 있는 아니사 피트리아나(Annisa Fitrianaㆍ26)씨. 지난 8월 서울대 어학당 동기의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본인 제공

 
배우, 모델, 미스 인도네시아, 그리고 장관 수행…. 화려하고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 아니사 피트리아나(Annisa Fitrianaㆍ26)씨는 지금 한국 서울대학교의 대학원생이다.
 
피트리아나씨는 인도네시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인도네시아 창조경제관광부에서 커뮤니케이션 분석 직원으로 일하다가 보좌관으로 승진하면서 전·현직 장관을 수행했다. 앞서 약 10년 간의 배우 및 모델 활동을 하고 2019년엔 미스 인도네시아에도 선발된 이력을 가졌다.
 
그런 그는 지난해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서울대 어학당을 거쳐 지난 8월 서울대 MBA에 입학했다. 피트리아나씨를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전 연락과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지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파트리아나씨의 억양은 어색하지 않았다. 1년 만에 한국 문화에 많이 적응한 듯 ‘꼰대’와 같은 은어도 안다고 했다.
 

“한국밖에 없는 시스템”…장관실 포기하고 한국행

위시누타마 쿠수반디오 창조경제관광부 장관(가운데)과 아니사 피트리아나(Annisa Fitrianaㆍ왼쪽에서 세번째)씨. 장관실에서 인도네시아 관광지 중 하나인 보로부두르 사원을 방문했을 때다. 본인 제공

인도네시아대 커뮤니케이션 학부를 나온 피트리아나씨는 경영과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피트리아나씨는 “장관실에서 창조 문화 산업 쪽으로 일하면서 지적 재산을 활용해서 창조적 산업에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졌다”며 “석사 학위를 따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장관실에 사표를 냈다.


한국행을 결심한 건 어찌 보면 예정된 선택이었다. 피트리아나씨는 하이브의 ‘위버스’와 카카오의 ‘웹툰’ 서비스를 보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위버스는 팬과 아티스트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는 “이런 혁신적인 서비스를 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너무 신기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택한 이유도 비슷했다. “찾아보니 서울대가 글로벌 순위도 높지만, 창조 문화 산업 쪽 대표들이 다 서울대를 졸업한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서울대에만 지원했다”고 했다. 서울대 출신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 SM의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 등을 언급하면서다.
 

10년 연예계 생활…“내 꿈은 배우 아닌 경영”

인도네시아 뮤지컬에 출연한 아니사 피트리아나(Annisa Fitrianaㆍ26)씨. 피트리아나씨는 "장관님께 양해를 구하고 일 외의 시간은 뮤지컬에 투자했다"며 "캐리어를 끌고 연습을 갔다가 끝나고 바로 출국하고. 입국하자마자 바로 연습하러 가는 등 정말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들이기에 다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피트리아나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뮤직비디오, 광고, 뮤지컬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혹시 내가 인도네시아 유명 배우와 인터뷰하는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피트리아나씨는 손을 내저으며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약 10년의 연예계 활동에 미련이 남아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배우나 모델이 꿈이 아니다. 경영을 하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피트리아나씨는 “아버지가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고 공부는 꼭 놓지 말라고 하셨다”며 “연기만 했다면 장관실 최연소 보좌관 등의 경력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부에 대한 관심이 더 컸기 때문에 배우 활동을 취미로 하면서 중심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보여줬다”…미스 인도네시아 4위

2019 미스 인도네시아 4위로 선발된 아니사 피트리아나(Annisa Fitriana)씨가 레드카펫에 선 모습. 본인 제공

피트리아나씨는 좋아하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고 한다. 장관실 업무와 배우 등의 활동을 병행하느라 휴가는 한 번도 다녀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피트리아나씨는 “작년에 서울대 어학당에서 공부할 때가 휴가였다. 수업 끝나면 쉴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에 미스 인도네시아(Puteri Indonesia)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관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피트리아나씨는 대회 측으로부터 먼저 출전 제안을 받았다. 24세이던 그는 “25세까지만 지원이 가능해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피트리아나씨는 4위를 했다고 한다. 그는 “나보다 예쁘고 뛰어난 사람은 늘 많다”며 “경쟁이 아닌 친구를 사귀러 간다는 느낌으로 나가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줬고, 그 부분이 심사위원들에게 감명을 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대회가 끝날 때쯤, 피트리아나씨는 새로 부임한 위시누타마 쿠수반디오 창조경제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승진 제안을 받았다. 함께 일했던 트리아완 무나프 전 장관의 추천 덕분이었다. 그가 맡은 직무는 장관실의 ‘커뮤니케이션과 전략 분석 담당’. 24살의 나이로 최연소 보좌관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내부에서 “미스 인도네시아가 여기 왜 있냐”, “비서 아니냐”는 등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피트리아나씨는 “전 장관님이 나를 추천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고, 저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밤낮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2019 미스 인도네시아 대회 당시 아니사 피트리아나(Annisa Fitrianaㆍ26)씨의 모습. 본인 제공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경영하고파”

피트리아나씨는 “카카오나 하이브와 같이 지적재산을 잘 활용하는 기업에 가서 배우고 나중에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경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MBA에서 경영을 배운 뒤 모국과 한국의 창조산업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피트리아나씨는 “한국 엔터테인먼트들처럼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