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본 세상] ⑻누가 '용(龍)'이 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11.05 16:48

수정 2021.11.06 12:0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유비는 급했다. 판을 뒤집으려면 인재가 필요했다. 소문이 자자한 와룡(臥龍) 제갈량을 찾았다. 눈 오는 날 세 번째 가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다.

삼고초려 [사진출처=바이두]

유비가 묻는다.
“위에서는 조조가, 아래는 손권이 옥죄고 있습니다. 돌파할 적당한 계책이 있겠습니까?”
대단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던 제갈량이었다. 떠보듯 던진 질문이 그랬다.
 
살며시 미소를 짓던 제갈량이 답한다.
“먼저 형주(荊州)를 손에 넣으십시오. 그 후 서천(西川, 지금의 쓰촨 땅)에 터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천하를 3분 하면 됩니다.”
 
천하삼분(天下三分), 정립(鼎立)의 형세를 짜라는 충고다. 
감동한 유비. '그런 묘책이 있단 말인가!' 그만 잡으면 대업이 성사될 듯싶었다. 꼭 잡아 옆에 둬야 했다. 유비의 태도가 서서히 변한다.
"비(備) 비록 미천하나 포기하지 마시옵고, 산에서 나오시어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제갈량은 여전히 싸늘했다.
 
"량(亮)은 밭 가는 게 즐겁습니다. 그 명은 받잡지 못하겠나이다."
급기야 유비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제갈량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신다면,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저 창생(민초)들은 어찌합니까? (先生不出, 如蒼生何)"
 제갈량은 유비가 던진 '창생'이라는 비수에 넘어갔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달라'는 대의를 쑥 들이미는데 어쩌겠는가. 아, 이제 세상으로 나가야겠구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나이다…."
그리하여 와룡 제갈량은 유비 곁으로 오게 된다.
 
유비가 '세상을 평정하고, 정권을 잡는 일에 도와달라'고 얘기했으면 어쨌을까. 아마 제갈량은 안 나왔을 것이다. '도탄에 빠진 창생을 구하라!'라는 명분을 듣고서야 움직였다. 유비에게는 그런 무서운 면이 있었다.

대의(大義)!

지금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분들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말이다. 돈으로 참모를 채우고, 이권으로 관계를 얽고, 지방선거 공천으로 줄 세우고…. 이래서야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왕과 신하, 리더와 참모는 모름지기 대의를 위해 뭉치고, 일해야 한다.
 
삼고초려 스토리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이 이야기가 주역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주역 첫 괘 '건위천(乾爲天)' [사진출처=바이두]

주역 첫 괘 '건위천(乾爲天)'을 다시 본다. 하늘을 뜻하는 천(天,☰) 괘가 위아래로 겹친 모습이다(䷀). 양(陽)의 세계다.

하늘은 지속해서 강건하게 움직이니, 군자는 이를 배워 끊임없이 강해지려 힘써야 한다. (天行健, 君子以自強不息)

'건위천' 괘의 괘상(卦象)이다. 남성다움의 기개를 보여준다. 혹 놓친 분은 지난 5회 스토리를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군자는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가? 어떻게 세상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리더가 되는가?"

주역은 용(龍)으로 이 질문에 답한다.
 
'건위천' 괘는 양효(陽爻) 6개를 용에 비유해 군자의 성장을 비유했다. 여섯 마리 용이 하늘로 나는 형상이다(時乘六龍, 以御天). 우리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해동 육룡(六龍)이 나르샤'라는 문구가 주역의 이 문구에서 비롯됐다.

ⓒ바이두

첫째는 잠룡(潛龍)이다.
물속에 잠긴 용이다. 함부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지 않는다(潛龍勿用). 오로지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린다. 공자는 '세속에 영합하여 마음을 바꾸지 않고, 명성을 구걸하지도 않는다'라고 잠용 시기의 처세를 얘기한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으며, 힘을 기르는 게 잠룡의 태도다. 스스로 힘을 축적하지도 않고 세상에 나간다거나, 세상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안절부절못하는 자, 그는 용이 아니다.
둘째는 현룡(見龍)이다.
힘을 기른 용은 이제 들판에 나타난다(見龍在田). 들판에 오른 용은 모든 사람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능력도 갖췄고, 겸손의 미덕도 겸비했다. 자연스럽게 군왕이 그를 주목하게 된다(利見大人). 왕이 현자를 발탁하는 것이다.
 
삼국지 삼고초려의 스토리 구성이 바로 이 주역에 바탕을 뒀다. 눈을 맞으며 들판을 가로질러 인재를 찾아가는 유비…. 군왕 유비와 군자 제갈량의 만남을 통해 '현룡'을 멋지게 그려냈다.
셋째는 척룡(惕龍)이다.
'惕(척)'은 '두려워하다', '(언행을) 조심하고 삼가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다. '척룡'은 한마디로 '경계심 많은 용'이다.
용은 이제 막 들판에 나와 군주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새로운 용의 출현을 시샘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귀신 잡는다는 제갈량 역시 처음에는 관우나 장비에게 견제를 당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終日乾乾, 夕惕若 낮에는 온종일 쉼 없이 일하고, 밤에는 허물을 반성하여 삼간다.
 
우리 정치계에서, 기업에서, 심지어 과학 영역에서조차 '척룡'의 필요성은 강조된다. 처세에 강한 사람은 막 뜰 때 조심해야 한다. 

[사진출처=바이두]

넷째는 약롱(躍龍)이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 요즘으로 치자면 국무총리 위치다. 용은 이제 위에 군왕만 있을 뿐 만인을 통솔하는 단계에 왔다.
 
본격적으로 일할 때다. 때로는 하늘로 도약하고, 때로는 다시 연못에 잠기고(或躍在淵). 신출귀몰이다. 공자는 이 단계 군자 처세를 이렇게 설명한다.
 
"군자는 나가고 물러섬에 있어 시의에 맞게 행동한다. 결코 군중에서 벗어나 방자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덕(德)을 쌓고 업(業)을 기른다. 그러기에 허물이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잘하면 하늘로 도약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해 다시 연못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或躍在淵(혹약재연)'이라는 효사(爻辭)는 '혹은 도약할 수도 있고, 혹은 연못에 다시 빠질 수도 있다'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섯째는 '비룡(飛龍)'이다.
괘의 다섯 번째 효(爻)는 군왕을 상징한다. 군왕의 자리에 하늘을 나는 용이 있는 것이다. 덕이 있는 군자가 제왕에 오르니 거침이 없고, 막힘도 없다.
 
훌륭한 인물이 주변에 모여든다. 구름이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는 모습이다(雲從龍, 風從虎). 성인이 나타나니 천하 사람이 우러러본다(聖人作而萬物覩).
 
만인지상(萬人之上), 용의 완성이다. 그러나 주역은 항상 지나침을 경계하고 있다. 흥하면 망하고, 성하면 쇠하는 게 주역의 논리다. 그러기에 여섯 번째 용이 나타난다.
여섯째는 '항룡(亢龍)'이다.
'亢(항)'은 '지나치다', '맞서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다. 그러기에 '항룡'은 자만심에 빠진 용, 백성과 맞서는 용이다.
 
백성과 맞서는 용의 종말은 어떠할 것인가? 

亢龍有悔, 盈不及久也! 차면 기우는 법! 군왕이 오만과 독선에 빠진다면 후회가 있을 뿐이다. 

주역이 '건위천' 괘의 효사를 경고로 끝내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건위천' 괘는 남성적이다. 세상을 호령할 만큼 기세가 등등하다. 육룡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교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독선을 경계한다. 주역은 효사 곳곳에 지나침에 대한 경고를 숨겨놓고 있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다.

독선에 빠진 군왕은 후회가 있을 뿐이다!

정당에서, 기업에서 용이 되고자 애쓰는 자. 바른길이 무엇인지 주역에 물어야 한다.
 
차이나랩 한우덕

[차이나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