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최대 현안인 과거사 갈등과 대북 공조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입장은 사실상 전임 아베 신조와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접근법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한국 측에 “먼저 해법을 제시하라”고, 대북 정책에선 북한의 무력 도발을 규탄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식이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3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일본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조기에 내놓도록 한국 측에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11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했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한·일 양국 간 경색 국면은 종전선언을 비롯한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노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일본은 종전선언에 회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북한이 한반도 긴장 조성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강하게 규탄했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 역시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엔 동의하지만 종전선언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라며 “오히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억지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는 게 우선이라는 한국과는 상당한 간극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모두 1~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하지만 한·일 정상 간의 대면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일 모두 국내 정치적 변수에 묶여 만나도 관계 개선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달 29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COP26을 계기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을 뿐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