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역사’ 숙제 남기고 떠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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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서 부인 김옥숙 여사,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 유족들이 헌화 뒤 좌석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지난달 30일 엄수됐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발인식은 자녀 노소영·노재헌씨 등 유가족 10여 명만 참석해 치러졌다. 노제를 위해 떠나는 운구 행렬엔 노태우 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철언 전 장관 등이 함께했다.
 
연희동 자택에서 치러진 노제는 조촐했다. 거동이 불편한 부인 김옥숙 여사가 집안에서 조용히 남편을 맞았다. 마당에 마련된 노제 재단 위엔 책 『제6공화국 실록』 4권과 생수병, 물그릇, 향이 전부였다.
 
20여 분간 치러진 노제 뒤 운구차는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으로 향했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오늘 영결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역사, 진실의 역사,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자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님이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88 서울올림픽 개최, 북방외교, 남북관계 전기 마련, 토지공개념 도입 등 치적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추도사를 한 노재봉 전 총리는 수차례 “각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육사 11기생들에게)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됐다”며 “이것이 그들(육사 11기생)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는 인간들이 만들면서 그 역사를 인간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는 정녕 어려운가 보다”라며 “등다리를 즈려밟고 편하게 가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이날 담담한 표정으로 영결식을 지켜보던 김옥숙 여사는 영정에 헌화하던 순간엔 끝내 눈물을 쏟았다. 영결식은 가수 인순이와 테너 임웅균씨가 88 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를 부르며 마무리됐다.
 
유족들은 영결식이 끝난 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진행했다. 이후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검단사에 임시 안치됐다가 파주 통일동산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딸 소영씨는 31일 페이스북에 “서울대 응급실에서 아버지와 마지막 눈맞춤을 한 지 채 일주일이 안 됐는데, 오늘 아침 아버지의 유골함을 뵈었다”며 “조문해 주신, 장례식을 준비해 주신, 마음으로 위로해 주신 모든 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올린다”고 전했다. 아들 재헌씨도 “아버지는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희생과 상처를 가슴 아파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자 했다”며 “이 시대의 과오는 모두 당신이 짊어지고 갈 테니 미래세대는 우리 역사를 따뜻한 눈으로 봐주기를 간절히 원하셨다”는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