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30일 유럽연합(EU)과 EU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각각 25%와 10%의 고율 관세를 취소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의 무리한 조치를 철회하고 동맹 갈등을 해소하면서 대중 전열을 가다듬으려는 의도다. EU도 이에 상응해 버번위스키와 청바지·오토바이 등 미국 상징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인 가운데 발표됐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오늘의 합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핵심 파트너들이 우리에게 합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같은 생각’은 민주주의·시장경제 등의 가치를 뜻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미국·영국·호주의 안보동맹 오커스(AUKUS) 창설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을 사실상 사과하며 몸을 낮췄다. 주요 20개국(G20) 지도자들은 자국 글로벌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해 국제적 세금 회피를 막고, 대기업이 이익을 얻은 국가에 과세권을 배분하는 ‘디지털세’ 합의안을 추인했다.
미국·EU “철강·위스키 관세 철회” … 트럼프 지뢰 치웠다
미국과 EU는 지난 6월 17년간 이어졌던 보잉과 에어버스 등 항공기 보조금 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에 합의했으며, 이번에 3년 넘게 이어진 철강 관세 분쟁도 해소했다. 이로써 미국은 동맹과 함께 대중 압박에 나설 외교적 시너지를 얻게 됐다.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EU와 한국·일본·중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를 각각 부과했던 관세는 이번 조치로 EU산만 일정 부분 풀린다. 마이런 브릴리언트 미 상공회의소 수석부사장은 뉴욕타임스(NYT)에 “영국·일본·한국 등 다른 동맹에 대해서도 철강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은 철회돼야 하며, 관세 및 쿼터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EU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전면 철회하지 않고 한 해 330만t의 쿼터에 대해서만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도록 풀어줬다. 백악관은 쿼터 한도까지는 무관세를 적용하되 이를 넘으면 232조에 따른 25%의 관세를 매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국 산업계에 보호 장치를 둔 것은 지난 대선 때 바이든을 지지한 철강·알루미늄 업계를 의식한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지난 9월 15일 오커스 창설 발표 뒤 마크롱이 “뒤통수를 맞았다”며 반발하자 바이든은 그달 22일 전화통화에 이어 이번에 직접 만나 몸을 낮추면서 갈등 해소와 동맹 복원에 나섰다. 올해 79세의 바이든은 44세의 마크롱과 나이 차가 35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로마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디지털세에 합의함에 따라 앞으로 ‘매출발생국 과세권 배분(필라1)’과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필라2)’이 이뤄진다. 필라1은 연결기준 연간 매출액이 200억 유로(약 27조원), 이익률이 10% 이상인 대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해당 대기업이 영업이익을 얻은 국가에 배분하는 내용이다. 한국은 구글·페이스북 등에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된다. 한국 기업 중엔 삼성 등 일부만 해당한다.
필라2는 2023년부터 글로벌 최저 법인세(법인세 최저한세율) 기준을 도입해 연결매출액이 7억5000만 유로(약 1조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15% 이상의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한다.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에 본사를 설치해 세금을 회피하는 걸 막는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