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검사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지난해 4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관련 자료 수집을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고 ▶MBC ‘검·언유착’ 보도 제보자 지모씨의 실명 판결문을 유출하는 한편 ▶이를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에 전달해 4·15 총선에 개입하려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형사절차전자화법·공직선거법 위반)를 받는다. 당시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절이다.
형법 123조 직권남용은 형법 324조 강요와 유사하다. 개인의 자유를 보호 법익으로 하는 강요가 국가적 법익으로 진화한 형태가 직권남용이다. 강요와 같이 그 행위에 따른 피해 사실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단순히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 직권남용 행위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했을 때”라는 직권남용 성립에 관한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구속영장에 따르면 공수처는 아직 피해자를 특정하지도, 피해 진술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와 관련해서도 지씨의 실명 판결문을 검색한 이들 중 손 검사에게 보고한 사람을 ‘성명불상’으로 기재했다. 이와 관련, 한 검찰 간부는 “사전구속이라는 건 공권력이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폭력이자 기본권 제한”이라며 “피해자의 피해 진술이 없는데도 피의자를 먼저 구속해 ‘피해준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게 타당한 수사냐”고 꼬집었다. 익명을 원한 한 차장검사도 “공수처가 제보자 조성은 씨와 김웅 의원 사이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과 녹취 파일 외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걸 자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손 검사를 대면 조사하더라도 유의미한 진술을 받아 수사에 진척이 있을진 미지수라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만약 손 검사가 스스로 고발장을 작성했다고 진술하면 직권남용 혐의 자체가 사라진다”며 “피해 진술이 없는 한 수사가 겉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도 “이렇게 수사하면 기소하더라도 무죄가 뻔하다는 건 판사 출신인 공수처 지휘부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