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 쪽 성(姓)씨를 쓰다 보면 계속 예전에 겪었던 피해가 생각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한부모도 괜찮아. 나는 한 인격체로서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있어.' 엄마가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밀실]
'당연함' 거부하고 아빠 대신 엄마 성 물려줬다
"대학교에서 연락 온 적도 있어요. 응시했을 때와 입학 후 이름이 달라서 '(입시) 과정에 문제가 있던 것 아니냐'는 전화였어요. 이번에 재난 지원금을 받을 때도 지금 이름으로 입력했더니 인증이 안 되더라고요."
2세 여부 모르는데…혼인신고 때 아이 성 결정?
"혼인신고를 하러 갔더니 그때 성을 선택해야 한다고 해서 놀랐어요. 엄마 성을 물려주려면 협의서까지 제출해야 하는 걸 보면서 예외적이고 차별적인 상황이라 생각했어요."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송씨는 "주변에선 '한부모 가정, 이혼, 재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냐'라는 걱정이 대부분"이라면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인가 싶어 속상했다"고 해요. 당사자 입장에선 편견이나 차별로 느껴지는 우려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엄마 성을 물려주는 게 그렇게 아이에게 못 할 짓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해요.
엄마 성 물려줬더니…"큰일도 아니에요"
"막상 하고 나서 보니까, 별거 아니었어요. 이제나로 출생신고를 하면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우려도 있었는데 (큰일은) 전혀 없었죠."
딸에게 이제나(2)라는 이름을 물려준 엄마 이수연(40)씨는 그런 걱정들이 '기우'라고 단언합니다.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 이제나는 누구의 딸이 아닌 이제나 본인으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옛날식 우려죠."
물론 제나가 '이제나'가 되는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에 맞섰다는 제나 아빠 박기용(44)씨는 엄마 성을 딸에게 물려주는 건 "선행을 쌓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가벼운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한다든지, 길 가다가 휴지를 줍고, 주변에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가 있다면 데려와서 보호하고 그런 식의 사회봉사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손상민씨도 "어머니 성을 쓰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어머니 성을 따랐으면 좋겠고, 우리 어머니들이 자부심과 정체성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이가 한명 두명 늘수록 "왜 어머니 성을 따랐어?"라는 질문을 받을 일도 줄어들 거라는 거죠. 실제로 그런 가족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물려주고 싶을 뿐"
이수연씨는 "(한국에선) 가족이라는 게 반드시 가부장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고 혈연과 혼인만으로 이뤄지는 폐쇄적 측면이 아직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배제된 사람들에겐 배타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다"면서 "엄마 성을 쓰는 게 가족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엄마 성을 쓰는 게 다양성, 개인 존중 등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건데요.
정부도 다양한 가족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식을 고심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부부가 협의를 통해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죠. 또한 '부성(父姓) 우선주의' 원칙을 포함한 민법이 헌법상 혼인·가족생활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청구도 지난 3월 제기된 적 있습니다.
엄마 성을 물려주면서 우리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가족들은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가족의 선택권을 조금 더 넓히려는 시도라는 데에 여러분은 동의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