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이날 바티칸 교황궁 2층 교황의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교황님께서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면담을 마친 뒤 비무장지대(DMZ)의 철조망을 녹여 만든 십자가를 선물하면서도 “성서에 ‘창을 녹여서 보습(쟁기의 날)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꼭 한반도에서 뵙게 되기를 바라겠다”며 교황의 방북을 다시 한 번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지 한달만인 그해 10월 교황을 처음 면담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 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 뵐 것을 제안했고,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한다는 (김 위원장의) 적극적 환대 의사를 받았다”며 “김 위원장의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교황은 당시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이날 두번째 면담이 끝난 뒤 북한의 공식 초청을 방북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과 같은 대답이다.
그러나 3년 전 문 대통령이 자신했던 북한의 초청장은 오지 않았고, 교황의 방북도 성사되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교황의 방북과 관련한 친서 교환 등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받자 “관련 내용을 (배석자에게) 전달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면담 내용을 북한에 전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북한도 언론 보도를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날 면담은 통역을 맡은 한현택 신부를 제외하곤 배석자 없는 문 대통령과 교황의 독대 형식으로 진행됐다.
청와대는 다만 문 대통령의 교황 면담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교황을 면담한 점에 의미를 뒀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의 면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교황이 G20의 정상 중 두분을 연이어 만났기 때문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주실 거란 기대감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6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공을 들이는 종전선언에 대해 “한ㆍ미는 순서, 시기, 조건 등에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며 이견을 감추지 않았다. ‘교황 방북’에 대해서도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김정은이 갖고싶어 하는 지위와 위신, 관심을 주게 될 뿐”이라는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30~31일 로마 G20 정상회의나 다음달 1~2일 영국 글래스고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간 한ㆍ미 정상의 별도 회동도 추진하고 있지만, 구체적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교황 면담에 이어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과 만나서도 종전선언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재차 촉구했다. 그런 뒤 종전선언을 기원하는 의미로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에서 개최한 ‘철조망, 평화가 되다’라는 전시회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