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년을 거슬러, 그 섬으로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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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 여행 ⑤ 대청도·소청도

대청도 농여 해변에 해가 지고 있다. 마침 물이 빠져 풀등이 훤히 드러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저녁해를 받아 붉게 물드는 장관을 넋 놓고 바라봤다. 지구가 10억 년 세월을 들여 지켜온 풍경은 화성의 풍경 같았다.

서해 먼바다 대청도와 소청도를 갔다 왔다. 형제처럼 두 섬은 지척에 있었다. 섬에 들어가서 보니 북쪽에 북한이 없었다. 북한은 동쪽에 있었다. 동쪽 수평선을 따라 길게 누운 땅이 죄 북한이라고 했다. 북한 땅에서 해가 뜨는 섬이라니. 대청도와 소청도가 얼마나 북쪽 깊숙이 올라가 있는지 새삼 곱씹다가, 대청도와 소청도는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먼 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두 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북한이 더 가까운 섬
 
대청도와 소청도는 먼 섬이다. 멀어서 낯선데, 오랜 시간 육지와 단절돼 더 낯설게 된 섬이다. 대청도와 소청도는 남한 본토보다 북한 본토가 훨씬 가깝다. 하여 두 섬에는 군인이 많이 있다. 두 섬에 거주하는 민간인 숫자와 군인 숫자가 얼추 비슷하다. 섬에서는 민간인과 군인이 마을 식당에 나란히 앉아 홍합칼국수를 먹고, 섬에 하나뿐이라는 카페에선 함께 줄을 서 아이스 커피를 주문한다. 여기엔 어떠한 위화감이나 어색함도 없다.
 

대청도엔 국내 최대 규모의 풀등이 펼쳐진다.

섬에서 겪은 낯선 일상은 외려 여행의 재미를 자극했다. 대청도 농여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였다. 마침 물이 빠져 풀등이 훤히 드러났다. 붉게 물든 해변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군인 두 명이 다가와 엄포를 놨다. “일몰 후엔 해변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농여 해변은 군사 보호구역이어서 해가 지면 출입할 수 없단다. 하여 일몰 직후 잠깐 펼쳐지는 이내의 장관을 놓치고 말았다.


소청도에서 발견한 홍합 밭.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장관이다.

섬의 소소한 풍경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청도에 마을은 두 곳뿐이었다. 150명 정도 사는데, 평균 연령이 74세다. 포구에 묶인 어선 대부분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였다. 바다가 잔잔하면 스티로폼 배에 모터를 달고 나가 미역을 줍거나 홍합을 딴다고 했다.
 

대청도는 흑산도보다 홍어 어획량이 더 많다.

대청도가 홍어의 고장이란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청도는 흑산도보다 홍어 어획량이 더 많은 섬이다. 대청도 홍어가 목포로 팔려 나가 목포에서 삭힌 뒤 ‘국내산 홍어’란 이름으로 서울의 남도 음식점에서 팔린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삭히지 않는다. 생홍어회를 먹거나 말린 뒤 쪄 먹는다. 대청도에선 빨래보다 홍어 말리는 풍경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박테리아 화석 ‘굴딱지 돌’
 

서풍받이. 대청도 서쪽 끝에 펼쳐진 80m 높이의 해안절벽이다.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대청도와 소청도는 10억 년 전 지형이 보전된 땅이다. 고립과 단절이라는 조건이 낳은 뜻밖의 결과일 테다. 두 섬에는 국가지질 명소 다섯 곳이 있다. 대청도에 앞서 소개한 농여 해변,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서풍받이 등 4개가, 소청도에 분바위와 월띠 한 곳이 있다.
 

소청도 분바위. 분처럼 하얀 바위가 700m가량 이어진다.

분바위는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다. 이름은 바위지만, 하얀 바위가 해안을 따라 700m가량 이어진다. ‘월띠’란 이름은 달빛에서 나왔다. 바다에 나가면 달빛 받은 분바위가 섬에 하얀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인단다. 산호 같은 생물이 쌓여 석회암을 이뤘고 10억 년의 시간을 거치며 대리암이 됐다. 분바위 아래는 온통 홍합 밭이었다. 노진호 지질공원해설사가 “물이 빠졌을 때만 드러나는 비경”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분바위 끄트머리에 박테리아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다. 소청도에선 ‘굴딱지 돌’이라 한다는데, 정말 돌에서 굴딱지 흔적이 보였다. 돌 이전의 돌이라고 할까. 정말 10억 년 전 지구를 탐험하는 것 같았다.
 

물 빠진 농여 해변은 반영 놀이에 제격이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농여 해변에 펼쳐진 풀등이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모래톱을 풀등이라 하는데, 대청도 풀등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다. 일부러 물 빠진 때를 기다려 풀등으로 나갔다. 해안에서 모래톱이 장장 2㎞나 이어졌다. 바다 건너 백령도가 코앞에서 어른거릴 때까지 걸어 들어갔다. 지금 밟는 모래밭이 몇 시간 전엔 바다였다는 사실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이 넓은 세상이 전부 내 것인 양 바다 한가운데 모래밭에서 반나절을 활보했다. 생경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바다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콸콸콸콸,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밀물은 소리로 먼저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행정보

대청도·소청도

인천 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 백령도 들어가는 배가 뜬다. 인천에서 3시간 10분쯤 달리면 소청도고, 3시간 40분 달리면 대청도고, 4시간쯤 달리면 백령도다. 여행사는 보통 2박 3일 여정으로 백령도와 대청도 여행상품을 꾸린다. 대청도와 소청도만 들어가려면 다음 여정이 제일 알차다. 오전 7시 50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소청도에 들어갔다가 반나절 소청도를 돌아본 뒤 오후 5시 배를 타고 대청도에 들어간다. 대청도에서 2박을 하고 사흘째 되는 날 오후 1시 배를 타고 대청도를 나온다. 소청도는 식당도, 민박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