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연결된 세상, 나누어진 세상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0:1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송길영 Mind Miner

6년 만에 책을 냈습니다. 생각을 정리해 두꺼운 종이 묶음으로 내보내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난해부터 온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만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 아님을 데이터를 통해 너무나 잘 알 수 있었기에, 거리두기로 나누어져 지친 분들에게 무엇인가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배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인류라는 종이 모둠살이를 통해 생존했다 합니다. 서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고 위로를 받으며 험난한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살아남았다는 것이죠. 논쟁이 붙을 때마다 치열하게 다투고 상대의 성공에 때론 질투하는 우리에게 모둠살이가 숙명과 같다니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헬스클럽에 가서 아무리 몸을 만들어도 곰과 호랑이 앞에선 너무나 나약한 우리가 이 행성 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음이 명백한 증거란 생각이 들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거리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
유튜브 통한 정보전달 늘어나
같은 채널에서도 관심사 분화
타인 인정하며 더 현명해지길
 
늘 같이 있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벌써 2년 가까이 제한되다 이제는 낯선 사람을 보면 위축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 환경의 변화가 엄청나다 새삼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명체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얻어지기도 합니다.
 

빅데이터

어쨌든 새로 무언가를 발표하면 알리는 책무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사이 지난 책을 내었을 때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새로운 미디어, 그중에서도 유튜브를 통한 정보 흐름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읽는 미디어에서 듣는 미디어로, 그리고 보는 미디어로 확장하면서 좀 더 친절한 설명과 같은 주제에 공감하는 시청자분들에게 유튜브 채널이 새로운 소식의 전달을 위한 주요 창구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제가 궁리한 내용에 관심을 주셔서 100만도 훌쩍 넘는 구독자분들을 모시고 있는 3개 채널에서 콘텐트를 전달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각 채널의 운영자분들이 중심을 잡고 진행하는 팬덤을 기반으로 형성된 구독자분들과의 교류에서 제가 체험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우리 세상은 연결돼 있습니다. 같은 유튜브 채널 속 구독의 행위는 단순히 그 콘텐트의 애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댓글로 교류하며 저마다의 고민에 집단적 지혜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흐릅니다. 삶의 단계마다 우리는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예전 복지국가의 슬로건처럼 생애를 거쳐 도움을 얻고 안온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생명체의 당연한 소망입니다. 환경의 변화에 맞춘 시스템의 현행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기에 불일치에 고민하는 분들은 곳곳에 모여 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 세상은 나누어져 있습니다. 채널당 평균 150만이 넘는 구독자는 5000만 모집단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더구나 현재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준비가 주요 테마인 채널들인지라 시청층이 상당히 겹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데이터를 보면 중첩되는 분들이 제한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채널 안에서도 관심사로 다시 분할되면 더욱 나누어짐이 심화합니다. 국가와 같이 하나의 모집단으로 뭉쳐있던 거대한 모둠이 이제는 다양하게 나누어지고 분화되는 것이 명징하게 보입니다.
 
셋째, 우리 세상은 지혜로워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은 주관적이나 교류와 다른 생각이 가진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타자의 입장과 그 안에서의 새로운 사고를 품어나갑니다. 작은 댓글 하나에도 각자의 느낌과 사고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처럼 만들어지는 클릭 스트림은 생각의 형성을 위한 소중한 자료를 전달합니다. 자신이 밝힌 생각에 동조하거나 질타하며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이들과의 교류에서 존재의 의미를 느끼기도, 작아졌던 생각에 부끄러워하기도 하며 나름의 자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 교과서 속 풀어야 할 문제들 속에는 제한된 진리와 한정된 효용이 담겨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의 답을 들춰보면 과정의 숙고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시리와 구글신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얻어지는 지식이 아닌, 인생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대장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제 인류가 서기 시작합니다. 이제 함께 궁리하고 서로 배우는 전 지구적인 실험을 통해 좀 더 현명해질 인류와 이 행성 위 모든 생명에게 공생의 길이 열리는 꿈을 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