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전쟁터였다. 총을 든 무장간첩과 5~6m 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총을 맞고 쓰러진 동료 곁에서 목숨 건 육탄전을 벌인 끝에야 간첩을 생포했다.”
내일 26주년…‘부여 무장간첩’ 경찰관들 첫 인터뷰
송 경감과 황 경위는 지난 16일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를 찾아 26년 전 사건 현장을 둘러봤다. 이들이 간첩 검거 현장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건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두 경찰관은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뛴다”며 “총알이 빗발치는 순간에도 간첩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용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송 경감과 황 경위가 전한 당시 상황은 급박했다. 충남 부여경찰서 소속 순경이던 이들은 사건 당일 오후 2시30분쯤 경찰서 안내 방송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부여 정각사 부근서 간첩들과 교전
이들은 동료 경찰 14명과 함께 M16과 카빈총 등을 챙겨 경찰 트럭에 올랐다. 당시 출동 경찰은 모두 “이런 시골에 무슨 간첩이라고…훈련 상황이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날은 해마다 한 차례 치르던 ‘독수리 훈련’ 첫날과 겹친 날이어서다.
간첩 김동식과 박광남 일당은 이날 부여 정각사 부근에서 고정간첩과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첩보를 입수한 경찰 보안수사 요원이 검문하려 하자 총을 쏘며 야산으로 도주했다.
"총알 빗발쳐도 간첩 잡겠다는 생각만"
이때 불과 5m 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정체불명의 남자 2명이 나타났다. 김동식·박광남이었다.
간첩과 가장 먼저 마주친 경찰은 송균환·나성주(당시 30세) 순경이었다. 간첩 김동식이 먼저 권총을 쐈다. 김동식의 권총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어 ‘틱 틱’하는 발사음이 났다. 송 순경 등도 실탄 10여발을 정신없이 발사했다. 저수지 옆 시멘트 옹벽을 사이에 두고 한동안 전투가 전개됐다. 총알이 ‘씽’하며 귓전을 때렸다.
"권총 총구가 대포 포신만큼 커보여"
송 경감은 실탄이 떨어질 때마다 카빈총 탄창을 여러 차례 갈아 끼웠다. 그러던 중 작은 돌 파편이 우측 어깨를 둔탁하게 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김동식이 쏜 총알 1발이 어깨에 박힌 것이었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총성이 나자 인근에 매복했던 황수영 경위와 장진희(당시 31세) 순경이 달려왔다. 이를 본 김동식 일당이 달아난 후 현장에는 나성주 순경이 쓰러져 있었다. 송 경감이 총에 맞은 나 순경의 상체를 붙잡아 안은 순간 나 순경은 고개를 떨구었다. 나 순경은 일주일 뒤 순직했다.
도랑에서 육탄전으로 김동식 검거
박광남은 김동식에게 “빨리 처리하고 트럭에 올라라”며 재촉했다. 하지만 김동식이 금방 돌아오지 않는 데다 경찰들이 가로막자 박광남은 차에서 내려 산으로 달아났다. 경찰들은 산을 향해 집중적으로 사격했다.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깊어가는 가을 하늘에 울려 퍼졌다.
산을 타고 달아나던 김동식은 자갈이 많은 비탈진 곳에서 미끄러져 도랑으로 빠졌다. 이때 김동식은 장진희 순경에게 총을 발사했다. 그가 갖고 있던 마지막 실탄이었다. 이 한 발에 장진희 순경은 복부를 맞고 쓰러져 순직했다.
황 경위 "온 힘을 다해 김동식 제압"
황 경위는 “김동식은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다부진 몸이어서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며 “무조건 그를 생포하거나 사살해야겠다는 각오로 온 힘을 다해 싸웠다”고 말했다.
달아났던 박광남은 3일 뒤에 인근 야산에서 사살됐다. 당시 공로로 송 경감과 황 경위는 1계급 특진하고 각각 인헌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도 만만치 않았다. 송 경감은 바로 옆에서 동료를 잃은 충격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교전 중 어깨에 상처가 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장진희 순경 모친을 봤다”며 “죄인 같은 심정이어서 곧바로 병원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실탄 어깨 박힌줄 모르고 13년 살아
당시 군·경은 김동식 일당에게 권총 2정, 만년필형 독총 2개, 지갑, 난수표 1매, 중파 라디오, 위조주민등록증, 미화 100달러 등 134점을 노획했다. 독총탄은 7~8m 거리에서 명중이 가능하다.
송 경감은 “검거 작전 이후 항상 주변을 살피고 신분 노출을 꺼리는 버릇이 생겼다”며 “집에 들어가서는 낯선 신발이 있는지부터 살핀다”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현충일과 10월 24일이 되면 고(故) 나성주·장진희 경사(1계급 특진)가 잠들어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는다.
경찰충혼탑서 10월 24일 추모행사
현장에는 충혼탑 이외에도 사건의 개요를 비롯해 김동식 생포 위치, 전적비, 교전장소 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다.
김동식 일당 북한 남포항서 남파
충남경찰청 등 보안수사당국에 따르면 당시 김동식과 박광남은 95년 8월 29일 북한 남포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거쳐 육지로 침투했고 한다. 제주 성산읍 온평리 앞 400m 해상에서 오리발 등을 이용해 헤엄쳐 육지에 도착했다.
북한 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이었던 이들은 경기도 성남 일대 여인숙에 머물면서 재야·운동권 출신 인사 7명과 접촉해 포섭을 시도했다. 당시 접촉한 운동권 인사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현역 장관 등도 있다.
김동식 안보강사로 전향…2013년 회고문
김동식은 이후 전향해 안보교육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3년 자필 회고문에서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고 썼다.
아울러 그는 “그런데 내가 포섭하기 위해 만났던 사람들은 왜 (우리를) 신고하지 않았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는 말도 남겼다. 현재 국회에는 불고지죄를 삭제 하려는 내용의 국가보안법개정안이 발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