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ㆍ훈민정음, 대놓고 왜곡
지난해 중국의 국정 교과서 '문화 교류와 전파'는 "경복궁의 구조와 양식은 중국 황궁의 복제판"이라며 "경복궁의 편액(扁額ㆍ현판)을 한자로 써서 중국 문화의 영향을 재현했다"고 서술했다. 해당 교과서는 훈민정음을 언문(諺文ㆍ한글을 속되게 부르는 말)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같은 해 또 다른 국정 교과서인 '국가제도와 사회치리'는 발해를 "당조(唐朝)의 지방 정권"으로 기술했다.
이에 더해 국정 교과서 '중외역사강요'(中外歷史綱要) 하(下)권은 "일본의 야철(冶鐵ㆍ제철)과 벼농사 기술이 중국 이민자로부터 전래했다"고 기술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측은 "일본의 야철과 벼농사 기술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는 게 한ㆍ일 학계의 정설"이라고 밝혔다.
살수대첩 왜곡..6ㆍ25 책임 美ㆍ유엔에 돌리기도
또 "수 양제(수나라 황제)가 고구려를 정벌했다"고 기술했다.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612년 수 양제의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은 한국사의 3대 대첩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를 정벌로 표현해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이밖에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말갈 부족의 수령"이라고 일컫고 조선을 "중국의 속국"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또 6ㆍ25 전쟁 발발 책임이 마치 미군과 유엔군에 있는 것처럼 서술한 내용도 있었다고 동북아역사재단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남침했다는 언급 자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동북아역사재단 측은 "전쟁 발발 상황을 사실대로 설명하지 않아 (6ㆍ25 전쟁 발발 원인을) 연합군의 북침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발간된 '중국역사'에도 발해에 대해 "말갈이 7세기 말에 세운 정권"이라거나 "당나라에 신하로 속하는 지방 봉건 정권"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발견됐다. 지도 상 고대 중국 왕조 영역을 한반도 북부까지로 표시한 경우도 포착됐다.
중국 국정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사 왜곡 사례 조사를 담당하는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중국이 자국 중심의 유리한 역사의 한 쪽 면만 기술하고, 상대편의 입장이나 역사 전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내용은 누락할 경우 이를 배우는 학생들은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中에 공개 대응 안 하는 정부
지난 2018년 이후 중국 국정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관련해 정부가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공개적으로 항의하거나 공식 성명이나 논평을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에 지성호 의원실이 21일 외교부에 중국의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사례를 문의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17년 전인 2004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관련 한ㆍ중 외교차관 간 구두 협의를 언급하며 "동북아역사재단과 긴밀한 협업 하에 중국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례 발견 시 고위급 및 실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시정을 지속 요구해오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의 대응 사례는 외교부 답변에 없었다.
이와 관련,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나 학계에서 아무리 중국의 역사 왜곡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도 외교 당국 차원에서 엄중한 항의는 고사하고 오히려 방관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역사 왜곡에 대한 중국 중앙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용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日 역사 왜곡 대응과 온도 차
이와 관련, 지 의원은 "외교부가 중국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우리 역사가 중국에 강제로 침탈당하는 시대적 과오를 후세에 남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