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기억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인터뷰에 나선 이 여성은 다른 이야기를 털어놨다. 기억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거로 떨어지는 듯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했던 당시의 감정을 수십 년이 지나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반대로 거절을 당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의 아픈 기억은 형벌 같은 상처를 줬다. 신기한 건 이 ‘재능’이 한정적이었다는 데 있었다. 시를 외우거나 전화번호부를 암기하는 기억력과는 다른, 자신의 삶을 둘러싼 것만 영상처럼 빼곡하게 간직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개그 프로보다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는 국정감사를 지켜보다가 문득, 질 프라이스의 절대 기억 능력을 좀 빌려왔으면 좋겠다는 허튼 상상을 했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대장동 게이트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 인사와 관련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말이 그랬다. 당시 성남시장을 지냈지만, 임명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인사 결정 절차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일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최근 너무 많다. 고발 사주 의혹 중심에 섰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제보자와의 통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녹취록이 나왔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마찬가지였다.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임성근 부산고법 판사와의 면담 내용에 대해 거짓으로 해명한 것으로 드러나자 대법원장은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다”며 올 초 사과했다. 문제만 터졌다 하면 나오는 권력자들의 연쇄 모르쇠, 이미 듣는 이들에겐 과잉기억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