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경기기업성장센터에 입주해 있는 에스오에스랩 사무실. 출입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회의용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반도체 칩이 눈에 들어왔다. 정지성(35) 에스오에스랩 대표는 책상 한가운데 있는 가로 8㎝, 세로 10㎝쯤 되는 주사위 같이 생긴 시제품을 가리키며 “회사의 내년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라며 빙긋 웃었다.
삼성 반도체 공장서 2000대 도입 예정
[혁신창업 인터뷰] 정지성 에스오에스랩 대표
반도체 생산라인에서는 한 번 사고가 나면 수백억원대 손해가 나기도 한다. 라이다는 OHT의 안전한 가동을 위한 필수장비인데, 지금까지는 일본 후쿠요에서 전량 수입해왔다. 정 대표는 “최종 테스트를 거쳐 삼성전자의 신규 반도체 라인에 라이다 2000~3000개를 공급할 계획”이라며 “이러면 대략 20억원대 매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2016년 설립…GIST 출신 4명이 의기투합
사실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는 라이다는 에스오에스랩으로선 ‘전채요리’쯤에 해당한다. 라이다의 적용 범위가 넓고, 성장 잠재력이 커서다.
라이다는 고출력의 레이저(빛)를 쏴서 주변의 물체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3차원(3D) 입체지도’를 그릴 수 있는 기술이다. 대상 물체까지 거리, 속도와 방향, 온도 등을 감지할 수 있다. 악천후에서도 정밀 측정이 가능하다. 최근 자율주행 기술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라이다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다. 구글의 무인자동차 웨이모의 루프(지붕) 위에 라이다 센서를 연상하면 된다.
에스오에스랩은 라이다에 초점을 맞춰 창업했다. 이름부터 ‘스마트 옵티컬 센서스(Smart Optical Sensors) 랩’의 줄임말이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라이다 전문업체다. 지난해 시장조사업체인 LED인사이드로부터 벨로다인(미국)·쿼너지(미국)·이노비즈(이스라엘)와 함께 세계 4대 라이다 제조업체로 선정됐다. 특허기술상 1등상(2020년),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2021 혁신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반도체칩 적용해 크기 줄이고, 가격 낮춰
에스오에스랩이 주력으로 하는 완전 고정형(솔리드 스테이트) 라이다는 ‘멀리’ 보고, ‘폭넓게’ 보는 게 핵심이다. 에스오에스랩은 전방 200m 이내의 장애물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인지 가능한 시야각이 180도다. 기존에 경쟁사가 선보인 고정형 라이다 렌즈의 최고 사각이 60도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회사의 기술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다. 장준환 에스오에스랩 최고기술책임자는 “이제껏 우리보다 앞선 제품이 없어 개발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심지어 측정장비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었다”며 “덕분에 특허 42개를 등록하는 등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2025년께 차량용 양산이 목표”
산업용과 차량용에서 한 발 더 나가면 ‘스마트시티 인프라’로써 라이다의 활용 범위가 확대된다. 대표적인 게 자동 주차다. 차량 운전자가 대형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 입구에서 내리면 라이다가 최적의 주차 공간을 찾아주고, 자율주행 기능과 연동해 주차가 자동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자동차가 스스로 발레파킹(대리주차)을 하는 셈이다.
에스오에스랩은 2023년께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168억원을 투자를 받았다. 자동차부품업체인 만도와 산은캐피탈, 유안타증권 등이 이 회사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는 2017년부터 4회에 걸쳐 20억원을 투자했다. 권오형 퓨처플레이 파트너는 “전 세계 라이다 시장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에스오에스랩 측에) 사업 아이템을 조언하고, 인재를 추천했다”며 “시장이 유망한 만큼 일단 궤도에 오르면 성장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美 연수서 창업의 어려움 실감
“마침 정부가 지원하는 창업 탐색 프로그램인 ‘아이코어(I-Corps)’에 참여해 보라는 대학 측의 추천이 있었어요. 이때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8주간 연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미국에서는 실력 있는 공대생은 대기업 취업이 아니라 창업부터 고민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코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운영하는 사업이다. 정 대표는 미국 연수 중 창업·기술 전문가 100명을 만나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장 불편한 지점), 즉 가장 필요한 기술을 사업 아이템화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정 대표는 “‘내 물건을 사주세요’가 아니라 소비자의 고충을 묻고,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라는 메시지였다”며 “사업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걸 체감했다”고 했다.
창업은 서두르지 않았다. 2014년 창업사관학교에 다니면서 세무회계와 마케팅을 따로 배웠다. 그런 다음 연구실에서 기술 이전비로 확보한 1000만원과 코딩교육·기술용역 등을 통해 마련한 4000만원 등 5000만원을 초기 자본금 삼았다. 법인을 만든 건 2016년이다.
김태완 GIST 창업지원센터 실장은 “대학 내 실전창업 프로그램인 ‘캠퍼스 CEO 챌린지’에서 수상하면 시제품 제작비 지원, 사무실 1년간 무상 제공 등이 혜택을 준다”며 “에스오에스랩은 창업동아리부터 차근차근 사업화 단계를 밟은 사례”라고 전했다.
월급 못 줄 뻔한 위기 겪기도
여기에다 삼성전자와 대신증권, 독일 콘티넨털, 스위스 ABB 등에서 이직한 사례도 있다. 정 대표는 “기술 개발도 물론이지만, 덕분에 전략·기획·재무 부문도 탄탄하다”고 자랑했다.
그렇다고 호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투자 유치가 늦어져 월급을 제때 주지 못 할 뻔한 적도 있다. 이때 공동 창업자가 담도 대출을 받고, 간부 직원이 자동차 사려고 모아뒀던 목돈을 내놓기도 했다.
김용래 특허청장은 “융복합 기술의 결정체인 자율주행차 시장은 아직 확실한 강자가 없는 태동 단계”라며 “지난 4월 에스오에스랩 본사를 방문해 ‘세계 무대를 겨냥해 창업했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핵심부품 업체 및 완성차 업체와 협력적 공급체인을 만들고, 우수 인재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육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