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논란은 복합적이다. 우선 개를 먹을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관습적 갈등이 있다. 관련법 사이의 충돌도 있다. 개를 가축으로 규정한 축산법과 개가 가축으로 규정되지 않아서 도축과 유통을 법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축산물위생관리법이 상충한다. 동물단체들이 추진 중인 ‘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물의 살상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과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는’ 축산법 개정안 등을 둘러싼 다툼도 얽혀 있다. 현재 약 11만7000가구로 추산되는 전국 식용개 사육농가의 생존권 문제도 걸려 있다.
이후 개장국은 보신탕으로 이름을 바꾼다. 닭으로 만든 닭개장이나 닭보신탕도 새롭게 등장했다. 88올림픽을 앞두고는 영국 등 해외에서 개 식용을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개 식용에 관한 첫 기록은 13세기 중반, 고려 후기 태안 마도3호의 목간에서 나온 구포(拘脯·개고기 포)다. 개장국은 ‘자궁(慈宮)에게 가장증(家獐蒸·개고기 찜) 진찬(進饌)하였다’(1795년 6월 18일, 『일성록』)처럼 왕실 행사에도 등장했고,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 이르러 개장국을 사 먹고’(1777년 7월 28일, 『속명의록(續明義錄)』처럼 외식으로도 먹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 개는 복날 시식이었다. 선풍기도 아이스크림도 없던 시절, 초복에 개를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긴, 즉 절박함이 깃든 음식이었다. 19세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개고기를 파와 함께 푹 삶은 것을 개장(狗醬)이라고 한다. 개장국을 만들어서 산초가루를 치고 흰밥을 말면 시절 음식이 된다. 이것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도 물리치고 보신도 된다’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개를 꺼린 사람들이 있었다. 소고기로 개장국을 따라 만든 육개장이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영양 부족이 해결됐고, 여름 나기도 수월해졌다. 반려견 인구가 급증했고,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의식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수천 년 이어온 개 식용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과 다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