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위기 놓인 한국계 입양아들, 이민자의 문제 아닌 인권의 문제”

중앙일보

입력 2021.10.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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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전 감독(가운데)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말 아름다운 영화제”라면서 “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푸른 호수’ 촬영 당시 모습.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입양된 후 20~30년을 미국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서류 하나 빠졌다고 ‘너는 미국인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나 생각했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푸른 호수’의 저스틴 전(한국 이름 전지태·40) 감독이 12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미국 아동 시민권법을 비판했다. 영화 ‘푸른 호수’는 미국에서 추방당할 처지에 놓인 한국계 입양아의 이야기다.
 
재미교포 2세인 전 감독은 “나를 원하지 않아 입양을 보낸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이미 그들에게 거부돼 미국에 왔는데 미국에서도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심적으로 엄청난 충격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 아동 시민권법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시민들이 입양했고, 입양아들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면서 “이민자 문제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인권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2000년 이후 외국 태생 입양인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아동 시민권법을 마련했지만 소급 적용이 안 돼 추방 위기에 놓인 2000년 이전 입양아가 수만 명에 달한다.


그가 각본·연출·주연을 겸한 ‘푸른 호수’는 3살 때 미국에 입양돼 뉴올리언스 토박이로 살아온 한국계 안토니오(저스틴 전)가 간신히 꾸린 ‘가족’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라온 안토니오는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 캐시가 전남편과 낳은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와 곧 태어날 둘째를 기다린다. 평생 꿈꿨던 행복도 잠시, 백인 경찰의 부당 처벌로 한국에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투박하되 절절하게 그렸다. 지난 7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뒤 올해 부산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됐다.
 
영화에는 전 감독 자신이 이민자라는 정체성도 투영됐다. 그는 “미국에서 아시아계로 살아가면서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미국이란 토양 안에서 우리는 삶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인 아내와 결혼해 세 살 된 딸을 둔 아빠다. “대본 작업을 할 때 아내가 임신 중이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의 역할, 선택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감독은 배우로 먼저 데뷔했다. 판타지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 한류 소재 미국 드라마 ‘드라마 월드’에서 여성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 등을 맡았다. 감독으로선 2014년 코미디 ‘맨 업’이 첫 영화다. 이후 LA 폭동 속 한인 형제와 흑인 소녀의 우정을 그린 ‘국’(2017)으로 선댄스영화제 넥스트 부문 관객상을 받았다.
 
차기작은 공동 연출을 맡은 애플TV 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다. 동명 소설을 토대로 3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사를 부산 영도 등에서 촬영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윤여정에 대해 “선생님은 잘못된 것을 타협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얘기해 바로 고치려고 하면서도 굉장히 너그럽고 개방적이고 친절했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적인 한류 바람에 대해 “한(恨)과 정(情) 같은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방탄소년단이나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한국 콘텐트가 많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람들도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