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7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441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70조1539억원)과 비교하면 4.97%(33조2877억원) 늘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증가율 목표치의 하단(5%)까지 거의 차올랐다. 은행별 증가율은 NH농협이 7.14%로 가장 높고, 뒤를 이어 하나(5.23%), 국민(5.06%), 우리(4.24%), 신한은행(3.16%) 등의 순이었다.
금융당국의 목표치 최상단인 6.99%를 적용하면, 5대 시중은행은 연말 대출 잔액을 716조9977억원 이하로 묶어야 한다. 연말까지 시중 은행의 대출 한도(여력)는 13조5500억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난 7∼9월 가계대출 증가액이 13조7805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목표치를 맞추는 건 쉽지 않다.
최근 일부 대출 창구의 문을 닫는 은행이 등장한 이유다. 지난 8월 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관련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수협중앙회도 이달부터 신규 가계대출을 하지 않는다. 카카오뱅크는 8일부터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일반 전·월세보증금대출, 직장인 사잇돌대출 등의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지난 5일 출범한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8일 기준 대출 잔액은 이미 3000억원으로 금융당국이 제시한 대출한도(5000억원)의 60%에 다다랐다. 이 정도 증가 속도라면 일주일 안에 대출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토스뱅크는 금융당국에 중ㆍ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만이라도 총량 규제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규제로 문턱이 조금이라도 낮은 은행으로 가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심해지고 있다"며 "결국 은행들이 레이스 펼치듯 대출을 축소하다 잇따라 가계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올해 7월 규제 지역 내 시가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과 1억원 초과 신용대출 등을 시작으로 내년 7월 총 대출액 2억 초과 대출, 2023년 7월 총 대출액 1억 초과 대출 등 3단계 걸쳐 DSR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도 들여다보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누르기 위해서는 전세대출 등을 대책에 포함해야 하는데 실수요자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를 막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 효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와 동시에 실수요자가 대출 중단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시중은행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의 대출 죄기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매년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관리해왔지만, 목표치를 초과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은행권은 연간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초과했다"며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갑자기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대출 대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