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현기의 직격인터뷰

"기시다, 위안부합의 파기 맘은 안 좋지만 한·일 개선 나설 것" [김현기의 직격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00:33

수정 2021.10.08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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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야마 신스케 전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4일 오후 도쿄 가스미가세키의 외무성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날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일본의 제100대 총리로 공식 취임한 날이었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일본 외교관 중 가장 오래, 그리고 깊숙이 한반도와 인연을 맺어 온 인물을 꼽으라면 열 중 아홉은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68) 전 사무차관의 이름을 댄다. 2000년 4월부터 서울 근무를 4년 넘게 한 것은 물론 독도·교과서·전시 위안부·강제 징용자 배상 같은 모든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핵심라인에 그가 서 있었다. 역으로 한국 외교 관료들에겐 가장 껄끄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사무차관을 마친 뒤에는 주미대사(2018.1~2020.12)로, 아베-트럼프 밀월 시대를 만들어냈다. 싱가포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당시 상황을 듣고 싶었다. 지난 1월 외교 일선에서 은퇴해 '외무성 고문'으로 있는 그를 만나고자 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신임 총리가 4년 7개월 동안 외상을 하는 동안 스기야마는 한반도를 담당하는 아시아·대양주 국장, 외무성 외무심의관(정무), 사무차관으로 보좌했다. 최측근이었다. '기시다 외교'를 그만큼 아는 이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기야마는 한국 언론과의 정식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했다. 외교관을 44년 했는 데 말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온건파로 불린 기시다가 자민당 총재선거 과정에서 적 기지 선제공격능력 보유, 대만·신장 자치구 문제를 개진하는 걸 보고 좀 놀랐는데. 
오랫동안 옆에서 모신 입장에서 보면 예전과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대외정책이나 소신이 바뀐 건 없다. 토론 과정에서 부각됐을 뿐이다. 내가 볼 때 바뀐 게 있다면 박력이라고 할까, 총리가 되겠다는 강한 결의가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점이다. 외상으로 있던 4년 7개월 동안 그가 밑의 사람에 언성을 높이거나 혼내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얘기 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품위, 품격이 있는 정치인이다. 외상에서 물러나는 날 외무성 현관에서 많은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

['기시다 외교' 4년 7개월 지켜본 스기야마 전 차관]
'공은 한국에!' 맞지만 일본 아무 것도 안할 순 없어
'쿼드' 한국 가입, 받아들일 국민적 감정 일본에 없어
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 이 타이밍에 제대로 될까
미 상원의원 전원 '회관 돌기', "진짜 맞냐" 전화 걸려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당사자인 기시다 총리가 '배신의 기억' 때문에 한·일관계 개선에 당분간 소극적일 것이란 분석도 많은데.  
그의 마음이 안 좋은 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유쾌하지 못한 기분과 한국과의 관계 모든 걸 연결시키진 않을 것이다. 위안부 합의는 이행해야 한다. 다만 한국, 일본 모두 이사갈 수도 없다. 또 서로에게 중요한 나라다. (기시다 총리는) 어떻게든 양국 관계를 개선의 궤도에 올려놓으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공은 한국에 있다'라고 하지만, 다른 한쪽(일본)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기시다 총리도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본다.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에 합의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신인섭 기자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강제징용자 문제도 풀기 쉽지 않다. 한국 내의 사법부의 판결이란 부분도 엄중한데. 
엄밀히 말하면 위안부 합의는 의회 승인을 얻은 정식 조약이 아니다. 하지만 기록이 서면에 남아있는 무거운 정치적 약속이다. 국제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한국 대법원 판결과 같이 국제법과 국내법이 어긋나는 경우는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교과서에는 진사(사과 혹은 사죄), 배상, 원상회복이 전형적 (해결) 방법이라 돼 있다. 이 세 가지 방법뿐 아니라 현 상황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포함해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쪽에서 (먼저) 의견을 내야 하는 법이다. 당사국(한국)이 그렇게 하되, 다른 쪽(일본)도 협력해 나가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그렇다치고, 수출규제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는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출규제나 지소미아 같은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가 한일간의 감정대립에 들어가 링크돼 버린 건 불행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대화하면 해결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기시다 총리가 내년 한국의 새 정부 출범(5월), 그리고 참의원 선거(7월)까지는 한일관계 개선을 보류할 것이란 관측, 바로 정상화에 나설 것이란 상반된 관측이 있는데. 
그건 모르겠다. 단 개인적으론 가급적 빨리하는 게 좋다고 본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30~3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가장 좋은 기회였는데 중의원 총선거일과 겹치고 말았다.


 
기시다 외교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2016년 4월 기시다 총리 고향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외무장관 회담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당시)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기념비에 헌화한 뒤 기시다 외상과 서로 허리와 등에 손을 돌려 다독거리는 모습은 기시다 외교의 백미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때 해프닝이 있었다. 원래 참배만 하고 도보 5분 거리의 원폭 돔(1945년 8월 6일 상공에서 원폭이 터진 장소)까지는 안 가는 것으로 돼 있었다. 민가가 가깝고 경호상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기시다와 케리가 '같이 걸어서 가보자'고 하면서 모두 같이 가게 됐다. 실무진은 난리가 났지만 옳은 판단이었다.    

2016년 4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한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에서 둘째)과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기념비 앞에서 서로 허리와 등에 손을 들려 다독거리고 있다. 뒤로 보이는 것이 원폭 돔이다. [지지통신 제공]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의체)에 한국은 가입을 않고 있다. 일본은 한국 참가에 찬성하나.
한일 간에는 공통분모가 있고 미래지향적 과제를 향해 같이 가야 하지만 민의와 어긋날 순 없다. 일본의 국민감정이 그것(한국의 쿼드 가입)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쿼드가 점점 더 발전하는 차원에서 한국이 들어와 귀중한 역할을 하는 건 환영하지만, 문제는 그걸 받아들일 국민적 감정이 있느냐 여부다. 아쉽게도 일본에 그건 없다. 전혀 없다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매우 따뜻하게 그걸 받아들일 마음은 없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유엔에서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했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대북제재완화를 미국에 요청했는데. 
정치·외교적으로 의미 있는 제안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 들어 다시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거리는 줄었는지 모르나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서 그런 정치적 유인책을 제공해 문제를 진전시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타이밍에서 제대로 될까'란 생각은 든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당시 일본은 어떤 의견을 전했나.
사실 북한 핵문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업다운이 계속 있었지 않나. 하지만 보다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건 확실했다. 그런 점에서 두 회담이 마이너스는 아니었다고 본다. 일본 입장에서도 '이젠 빨리 뭔가 하지 않으면 납치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다.  

 

주미대사 당시 최고의 미일 관계를 구축했다. 비결이 있었나.
부임 직후 하트 빌딩(상원 의원회관)에 발품을 팔아 100명의 상원의원 방을 다 돌았다. 부재중이면 보좌관에게 명함과 이력, 그리고 벚꽃 축제 기념배지 같은 소품을 전하고 왔다. '이런 동양적 정치문화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주저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동서고금 다 똑같았다. '일본대사가 다녀갔다고 하는 데 진짜냐. 이런 건 처음이다. 만나자"라 전화를 걸어 온 상원의원이 대부분이었다. 그걸 계기로 친분이 두터워졌다. 하원의원은 435명 중 150명 정도 돌다 너무 많아 그만뒀다(웃음). 지방 주를 다닌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은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코로나 영향으로 50개 주 중 38개 주에 그쳤지만, 지방을 열심히 찾아 주지사, 주 유력인사와 쌓은 네트워크가 외교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악수를 나누는 스기야마 신스케 전 주미대사 [지지통신 제공]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과 특히 친했다고 하는데. 
우연한 계기였다.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를 칠 때 2조에 아소 부총리, 해거티 주일미국대사, 그리고 내가 들어갔는데 마지막에 멀베이니 실장이 손들고 들어왔다. 나를 제외한 3명이 워낙 실력자라 골프 실력이 형편없는 내가 오히려 화제가 됐다. 멀베이니는 '대사, 진짜 못 치네요'라고 깔깔 웃었다. 그러면서 친해졌다. 멀베이니는 아일랜드계 혈통이라 그런지 위스키를 매우 좋아했는데 우연히도 일본산 '야마자키 위스키'의 광팬인 것을 알고 이후 수시로 함께 마시며 각별해졌다. 골프에 술 이야기만 하니 내가 불성실해 보이는데(웃음), 그것도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