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6일~지난해 8월 21일 권순일 대법관실을 8차례 찾았다는 기록이 공개되자 화천대유 김만배씨가 내놓은 해명이다. 대법원 기자실을 제집처럼 여겼고 대법원에서 2~3년 근무하는 파견 판사들마저 손님처럼 맞았던 김씨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권 전 대법관의 행적과 캐릭터 때문이다.
법원 출입기자였던 2015년 7월 어느 날. 야근하러 귀사했을 때 막 통화를 마친 사회부장은 “권순일인데, ‘주심 사건에서 정책법원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을 드높일 엄청난 판결을 한다’고 하네”라고 말했다. 같은 달 23일 나온 ‘엄청난 판결’은 변호인과 의뢰인간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반(反)사회질서 행위’여서 무효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판결의 파장도 컸지만 더 기억에 남는 건 부장과 그의 통화 장면이었다. “형” “동생” 사이라도 대법관 6년 만큼은 거리를 두는 게 불문율인 법조 취재 풍토에서 대법관의 판결 홍보는 기행(奇行)에 가깝다.
권 전 대법관의 발자취가 물음표가 된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다. ‘양승태 법원’을 갈아엎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12월 그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한 것에 첫 물음표가 붙었다. 이후 윤석열표 ‘사법농단’ 수사에서 그는 ‘법관 블랙리스트’의 공범으로 지목됐지만 기소를 면했다. 법조계엔 그가 “말을 갈아탔다”는 말이 파다했다. 우후죽순 창당이 줄 잇던 지난해 총선 직전 ‘권순일 선관위’는 ‘국민당’‘비례자유한국당’ 등은 당명으로 쓸 수 없지만 ‘더불어시민당’은 괜찮다는 결정으로 논란을 불렀다. 지난해 9월 대법관 임기만료땐 중앙선관위원장 자리도 함께 비우던 관행을 깨고 인사권을 행사한 뒤 ‘지각’ 퇴임했다.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 전원합의 과정도 ‘포스트 김명수’로 거론되던 권 전 대법관에겐 김씨와의 만남과 무관한, 말을 갈아타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 그래도 그 두 사람이라서 궁금하다. 김씨는 이발소에 갔을까. 권 전 대법관이 받은 건 월 1500만원이 다일까. 인사만 나눴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