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한화…‘연례행사’된 대기업 탈출에 구미 비명

중앙일보

입력 2021.10.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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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는 대구·경북 지역 경제를 이끈 산업도시다.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경북 구미시 공단동 한화 구미사업장 앞. 높은 벽돌담 뒤로 보이는 건물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출입구 옆 관리실 직원들이 교대하는 모습만이 종종 눈에 띌 정도였다.
 
한화 구미사업장은 최근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 계획을 발표해 지역에 파장을 일으켰다. 8만9000㎡ 규모의 구미사업장 토지와 건물을 계열사인 한화시스템에 넘기고, 구미에서 충북 보은으로 사업장을 옮긴다는 발표였다. 한화 구미사업장은 유도무기·화포용 신관 수중센서를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360여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한화를 비롯한 대기업이 연이어 구미를 떠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경제를 이끄는 산업도시인 구미시가 잇따라 대기업을 다른 지역에 내주면서 지역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미에서는 2019년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가 경기 수원으로 이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LG전자 구미사업장 TV 생산라인 일부가 인도네시아로 이전을 결정했다. 최근에는 LG디스플레이의 구미 비산복지관·러닝센터 매각 소식도 전해졌다.
 

최근 한화 구미사업장 등 대기업들이 연이어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결정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김정석 기자

구미시는 한화 구미사업장 이전에 대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구미시 관계자는 “이번에 이전하는 한화 구미사업장은 지역에 협력업체를 많이 두고 있지 않아 파장이 적다”고 했다. 하지만 한화 구미사업장이 구미를 떠나면서 지역 방위산업 비중 축소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지적은 여전히 뒤따른다.


연이은 대기업의 탈(脫)구미로 인한 지역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진호(35)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구미 지역의 경기가 급격하게 침체되고 있었는데 연이은 기업 이전까지 겹치면서 식당 운영에도 어려움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구미 지역에서 대기업만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구미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1~8월 지역 신설 법인 수는 411개사로, 전년 동기간(465개사) 대비 11.6% 감소했다. 업종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26%)은 지난해 동기간 139개사에서 올해 107개로 32개 줄었고 도·소매업(15.6%) 역시 91개에서 64개로 감소했다. 반면 서비스업(22.1%)은 69개에서 91개로, 건설업(13.4%)은 47개에서 55개로 각각 증가했다. 자본금 규모별 신설 법인은 5000만원 이하가 289개로 전체의 70.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구미상의 심규정 경제조사팀장은 “올해 구미 지역 신설 법인 중 제조업체 숫자가 10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구미시와 관계기관은 구미산업단지 미래 신성장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시민단체는 대기업이 구미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각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미경실련은 지난달 27일 성명을 통해 “대기업이 해마다 하나씩 구미를 떠나는 ‘연례행사’가 됐다”며 “취수원 문제를 놓고선 격한 성명전을 펼치던 시장과 국회의원들이 대기업의 탈구미 앞에선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이 같은 침묵은 또 다른 대기업의 해외 이전 판을 깔아주는 위험신호가 될 수 있다. 대기업에 각인될 정도로 기업 응원을 차별화하고, 대기업 탈구미 방어선 구축을 위해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