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왕쭈센(王祖賢·왕조현)·장궈룽(張國榮·장국영)·류더화(劉德華·유덕화)·린칭샤(林靑霞·임청하) 등 무협·느와르로 대표되는 80·90년대 홍콩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젊은층을 사로잡았고, 책받침, 브로마이드의 단골 모델을 넘어 식음료의 CF까지 진출했다. 그런 만큼 추석이나 설 명절 연휴 기간에 극장가나 TV 브라운관에서 이들을 보는 것이 당연시됐다.
저우룬파·청룽, 홍콩 시위에 극과극
'책받침 여신' 왕쭈센은 캐나다 이민
리롄제, 국적 문제로 활동에 빨간불
◇親 시위대 vs 親 중국
▶저우룬파 (周潤發·66세, 대표작 '영웅본색'(1986))
"홍콩은 세계 두 번째의 영화 메카. 뛰어난 기획력과 걸출한 스타발굴로 80년대부터 동남아를 석권했고, 93년 이후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80년대 후반을 풍미한 것은 이른바 '홍콩 느와르'. 오우삼·주윤발 콤비의 '영웅본색'이 테이프를 끊었다." (조선일보 1996년 7월 22일)
저우룬파는 홍콩 영화가 내리막길을 걷던 2000년대에도 '와호장룡'(2002), '황후화'(2006) 등으로 활동했지만,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작품 수는 확연히 줄었다.
중국 당국의 견제로 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도성풍운 2'(2015) 이후에도 '코드네임: 콜드 워'(2016), '도성풍운 3'(2016), '무쌍'(2018) 등을 찍으며,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청룽(成龍·67세·대표작 '폴리스 스토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홍콩 스타였으며, 최근 정치적 행보로 많은 구설에 오르고 있는 배우다.
2014년 '폴리스 스토리 2014'의 내한 레드카펫 행사에서 자신을 "반(半)한국인"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대표적 친한(親韓)파로 꼽힌다.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다.
하지만 2014년 홍콩의 '우산시위'에서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하는 한편 정부 측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2019년 8월엔 홍콩 시위와 관련한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에서 “나는 국기(오성홍기)의 수호자다. 한 명의 홍콩인이자 중국인으로서 기본적인 애국심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2020년 5월엔 홍콩 국가보안법 지지 선언에 동참해 비난을 받았다.
◇ '느와르'와 '무협'을 대표한 스타
▶류더화 (劉德華·60세·대표작 '지존무상')
"1991년에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내한 콘서트를 가진 적도 있는 유덕화는 지난해 연말 KBS '지구촌 영상음악'에서 팬들의 엽서집계 결과 '아시아 최고 인기가수'로 선정될 정도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선일보 1993년 5월 22일자)
그는 2000년대 이후에도 50여편이 넘는 작품을 찍으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2002년 개봉한 '무간도'는 '홍콩 느와르의 부활'이라는 호평을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기도 했다. 다만 '무간도' 이후로 한국 관객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한때 저우룬파 등과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해 중국 활동이 어려워졌다고 알려졌지만, 중국에서 1억5000만달러를 들여 만든 '그레이트 월'(2016)에도 출연하며 이런 소문을 일축했다.
광고모델 출신 주리첸과 결혼해 딸 류샹후이를 두고 있다. 이 사실은 2009년 대만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올해도 영화 '당인가탐안 3'에 출연했다.
▶리롄제(李連杰·58세·대표작 '황비홍')
"'황비홍', '동방불패' 등 이연걸 주연의 홍콩 영화들이 잇따라 빅히트를 기록하자 국내 수입업자들간에는 '이연걸 영화잡기 붐'이 일고 있는 실정…"(동아일보 1992년 4월 11일자)
리롄제(이연걸)는 앞선 배우들에 비해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데뷔는 1979년작 '소림사'지만,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황비홍'(1991)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한동안 '홍콩 느와르'에 밀려있던 무협 영화의 붐을 다시 이끌었다. 황비홍 시리즈는 12편이 제작되고 모두 한국에 수입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다른 홍콩 영화 스타들이 대개 홍콩이나 대만 출신인데 반해 리롄제는 중국 랴오닝성 출신이며, 미국(2003)→싱가포르(2009)로 국적을 바꿨다. 이때문에 최근 국수주의 바람이 거센 중국에서 도마 위에 올라있다. 중국 국가광전총국은 9월 외국인 연예인에 대한 ‘국적 제한령’을 추진하면서 당분간 중국에서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배우 출신 부인 리지와 1999년 결혼했으며, 전처에서 얻은 두 딸을 포함 4녀를 두고 있다.
▶80년대 여신 vs 90년대 카리스마
◇왕쭈센(王祖賢·54세·대표작 '천녀유혼')
"아스라한 미모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홍콩 여배우 왕조현양이 자신의 출연영화 '천녀유혼 2'의 한국 상영에 때맞춰 19일 내한했다. 음료 광고 출연 이후 두번째 한국에 온 그녀는 20, 21일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사인회를 갖고 MBC TV에 출연할 예정."(경향신문 1990년 7월 2일자)
간혹 파파라치의 사진이나 SNS를 통해 온라인에 최근 모습이 비쳐지고는있지만 연예계와는 선을 그은 모양새다. 대만 출신이며 양안 관계나 홍콩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절 나서지 않고 있다.
◇린칭샤 (67세·林靑霞·대표작 '동방불패')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 홍콩 여배우 '임청하 붐'이 일고 있다…주윤발-유덕화-왕조현 등 많은 홍콩 스타가 국내에서 인기를 누려왔으나, 임청하는 좀 특이하다. 그는 젊고 아리따운 여배우가 아니라 경력 20년에 출연작이 80여편이나 되는 올해 나이 39세의 중년 여인이다… 대만 출신인 그의 매력은 찬 바람이 감도는 듯 입가에 머금은 고혹적인 미소에 온 몸에서 풍기는 기품있는 분위기다."(조선일보 1993년 2월 20일자)
'동방불패'(1992)를 통해 중성적 카리스마로 이름을 떨친 린칭샤는 리롄제와 함께 저우룬파·왕쭈센 등을 대신해 90년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어갔다.
대만에서 1973년 데뷔해 이미 스타 배우였던 그녀는 '동방불패'가 개봉될 당시 38세였다. 대만에서는 청순한 이미지로 로맨스물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홍콩으로 무대를 옮긴 뒤엔 '백발마녀전', '녹정기' 등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에서 차가운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인기가 한창이던 1994년 홍콩 '뉴웨이브' 시대의 스타였던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비치기는 했으나 연기 활동 재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1994년 6월 홍콩 재벌 싱리위안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며, 결혼 24년 만인 2018년 이혼했다. 둘 사이에는 딸 2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