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서울 노원구 월계2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소원성취함’을 열자 김순자(83·가명) 할머니의 소원이 적힌 종이가 세상에 나왔다. 팔십이 넘은 어르신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꿈이룸 신청서’였다.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다는 김 할머니가 “심리적으로 작은 위안과 안정을 찾고 싶다”며 가지고 싶은 것으로 꼽은 건 다름 아닌 ‘수의’(壽衣)였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꼽은 소원 ‘이것’
호적을 늦게 올려 원래 나이는 91살이 넘어간다는 김 할머니는 ‘수의’ 옆에 괄호를 치고 ‘사후 대비 용품’이라고 적어놓았다. 신청 사유에 김 할머니는 “처녀 적에 원치 않게 아들을 얻어 채소 행상을 하며 어렵게 키워냈다”며 “성인이 된 후에 생활고를 비관한 아들이 집을 나갔고, 한 번 돈을 달라고 찾아와 생떼를 부린 뒤 연락이 끊긴 지 40년”이라고 자신의 가정사를 설명했다.
이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인생을 살아오며 생활고 속에서 회의감과 우울감으로 힘들었다”며 “단기 기억상실과 난청, 치매 초기 증상으로 이제는 건강에 자신이 없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수의를 장만해 심리적으로 작은 위안과 안정을 찾고 싶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어려서 글 못 배워” “죽기 전에 세상구경”
소원 중에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소원도 여럿 있었다. 국내 여행을 가고 싶다며 ‘무장애 여행지 희망’ 문구를 함께 적은 서영옥(가명·74) 할머니는 “원래 심한 지체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당뇨와 뇌경색으로 점점 몸이 안 좋아져 우울감이 크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홍제동에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는 사촌 언니와 왕래가 있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마저도 연락할 일이 없어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코로나로 인해 복지관도 개방을 하지 않아 자력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죽기 전에 세상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가지고 싶은 제품에 담긴 사연도 각양각색
김영철(가명·70) 할아버지는 “틀니를 한 상태에서 영양죽을 주로 먹어야 하는데 변변한 냉장고가 없어 상해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냉장고를 갖고 싶다고 했다. ‘환자용 전동침대’를 갖고 싶다는 권혜옥(가명·75) 할머니는 “허리 통증이 심해 집에서 기어 다니면서 생활하고 있다”며 “의료기기를 사고 싶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다.
어르신들은 ‘꿈이룸 신청서’에 “나이 많고 몸도 불편한 이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시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나이 들어도 남의 신세는 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드린다” 등의 문구를 함께 적으며 소원 성취에 간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소원 성취로 희망 가지고, 고립감 해소되었으면 ”
자활센터는 지난 2주간 대상자로 선정된 어르신의 자택을 직접 찾아 1차 면담을 진행했다. 독거노인의 생활환경 점검과 심리 상담 등이 함께 진행된 면담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성취가 어려운 여행 등의 소원이 다른 소원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구와 자활센터는 추석 이후 진행될 2차 면담 때 물품 등을 전달하며 소원 성취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한빈 서울노원북부자활센터 사회복지사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생을 마감하는 시기에 고독감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소원 성취를 통해 삶에 희망도 드리고, 면담을 진행하면서 고립감을 해소하고 맞춤형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