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기사와 시니어의 대결인 대방건설배에서는 죽은 돌 하나를 들어내지 않은 채 두다가 실격패를 당했다. 올해는 유독 사석 관련 반칙패가 많다. 최근 아마추어들의 제전인 내셔널리그에서는 상대의 사석 문제로 반칙승을 거둬 올라간 팀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한국기원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철균 9단은 “규정이 가혹하리만치 불가역적이다. 단순 실수에 대해 주의, 벌점 등 좀 더 유연하고 단계적인 벌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축구는 공격권을 넘기거나 심하면 옐로카드, 레드카드가 있다. 농구는 파울을 범하면 벌점을 주는 자유투 제도가 있다. 게임 몰수는 없다. 골프는 룰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지만 역시 벌타가 있을 뿐 게임 몰수는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할 때 바둑 룰은 너무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런 반칙에 대해 대국 상대가 마음 약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냥 진행이 된다는 점이다. 심판도 종종 못 본 척 넘어간다. 일례로 일본에서 활약 중인 조치훈 9단은 국내에 와서 종종 스케이팅 착점을 하지만 심판들은 그냥 넘어간다. 일본은 그런 행위가 반칙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철균 9단은 “일본은 5년간 반칙패가 단 한 건 있었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반칙패가 한 건도 없었다”고 말한다.
바둑은 일단 계가를 마치면 어떤 경우도 승부가 뒤집히지 않는다. TV 중계 대국의 경우 영상이 있기 때문에 대국 종료 전까지만 누군가 어필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올해 여자리그에서 오유진 7단은 상대의 착점 이동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그대로 진행해 패배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모든 룰이 지향하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느낌을 풍기기 시작한다. 오유진은 어필하는 순간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냥 졌다. 그런 승리가 부끄러웠을까.
축구에선 상대편에 부상자가 발생하면 볼을 필드 바깥으로 차 낸다. 상대방의 불행을 틈타 이득을 보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데 지금의 바둑 룰은 ‘친고죄’ 형태를 띠고 있어서 선수들을 각박하게 만든다. 선수들의 승부관과 도덕률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바둑은 온라인대국을 포함, 규정을 다시 돌아볼 때가 되었다. 지금 바둑 룰은 너무 가혹해서 승부를 허망하게 만들고 바둑의 묘미를 떨어뜨린다. 단순 실수의 경우 게임 몰수 이전에 경고나 벌점 등 단계를 두어 TV 중계 중인 승부가 어이없이 종료되는 일이 없도록 팬 친화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