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비핵화 역행 행위에도
항의는커녕 북한 감싸기 급급
최 차관의 논리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조항에 영변 핵시설이 특정돼 있지 않아 명백한 합의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너무나 소극적이고 협소한 자구 해석이며 북한을 감싸려는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해석이다. 문구를 따져봐도 최 차관의 해석은 옳지 않다. 4·27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고 규정돼 있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명백하게 비핵화에 역행하는 행동인데 어떻게 합의 위반이 아니라 할 수 있나. 설령 비핵화 협상이 결렬된 상태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상 유지라면 모를까 비핵화에 역행하는 일을 감싸면 안 된다. 판문점 선언은 또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한다’고 규정했다. 이미 채택된 선언에는 1991년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이 포함돼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영변 원자로의 냉각수 방출 정황이 포착된 것은 7월 초의 일이다. 그에 앞서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이 2월부터 7월까지 가동됐다고 한다. 한·미 간의 정보 협력이나 상업용 위성 정보의 구독 등을 통해 우리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정부가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 항의했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
대신 정부가 한 일은 7월 27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이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의 성과물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뒤이어 여당 의원 70여 명이 북한의 요구를 덥석 물어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자고 연판장을 돌렸다. 실제로 정부는 8월 연합훈련의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청와대·정부·여당이 한목소리로 남북 관계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고 안보 태세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를 하는 사이에 북한은 유유히 핵물질 재고를 계속 늘렸다. 그런데도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항의는커녕 협소한 논리로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두둔했다. 아집에 가까운 북한 감싸기이자 눈치보기다. 이런 저자세로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