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번에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의 폐기와 함께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폐기까지 이렇게 언급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큰 걸음을 내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9ㆍ19 평양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돌아온 직후인 2018년 9월 20일 ‘방북 성과 대국민보고’에서 한 발언이다. 평양 공동선언에 ‘북측은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한 의미 부여였다.
하지만 3년 뒤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정황이 포착된 데 대한 정부 입장은 “남북 합의 위반은 아니다”였다. 과거 북한의 영변 폐기 제안을 남북 정상 간 합의의 ‘옥동자’처럼 내세웠던 것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라는 지적이다.
“北 영변 제안, 버팀목”이라더니…
그러나 북한이 영변 폐기를 제안했을 때는 이를 남북 정상 간 합의의 큰 성과로 강조한 정부가 영변 재가동은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맞은 2019년 9월 19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평양 선언의 성과는 북측으로부터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는 향후 북ㆍ미 간 대화의 동력이 유지되는 데 일종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 간 협의를 통해 북ㆍ미 간 주요 의제 한 가지를 테이블에 올려둔 셈”, “(평화 프로세스에서)상당한 비중의 의미”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文, 수차례 “北, 미래핵 이미 폐기”
당시 정부는 풍계리 조치의 의미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미래핵’, 영변 핵시설은 ‘현재핵’으로 분리해 접근하는 분위기였다. 이 자체가 통상적 개념과 달라 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핵물질을 생산하는 영변 핵 시설은 현재핵과 미래핵 모두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영변을 다시 돌려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정황이 짙어지면서 북한이 미래핵을 폐기했다는 문 대통령의 확언도 사실과 다른 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영변 폐기=제재 완화’ 가치 띄워
문 대통령은 2019년 6월 세계 6대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근간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2018년 10월 한ㆍ프 정상회담)는 입장도 밝혔는데, 영변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꿀 수 있다는 이런 인식은 '하노이 노 딜'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영변 핵시설은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의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북한이 영변을 재가동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합의에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처럼 합의의 취지나 정신보다 기계적 문구 적용을 앞세우는 정부의 태도에는 결국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깔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영변 폐기의 전제조건으로 붙어 있는 게 ‘미국의 상응 조치’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영변을 재가동한 게 사실이더라도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은 ‘미국이 상응 조치를 하지 않았으니 북한도 영변을 폐기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처럼 들릴 여지가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ㆍ미 간 비핵화 협의에서 영변은 중요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재가동하는 것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적 제스처로 봐야 한다”며 “그럼에도 이게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미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