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는 최근 10년 넘게 이어진 수주 절벽에서 빠져나와 세계 1위의 위상을 되찾았다. 전 세계에서 발주하는 선박을 쓸어담는 중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의 올해 7월까지 수주량은 1276만 CGT(표준화물 톤수)였다. 13년 만에 최대치다.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상반기에만 174억 달러를 수주했다. 세계 발주 물량의 10%가 넘는다. 조선 3사를 합치면 올해 목표 수주액의 74.4%를 상반기에 채웠다.
정작 조선업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배 만들 사람이 없어서다. 일감은 확보했는데 수확을 못 하는 꼴이다. 고용보험 피보험자 기준으로 조선업 종사자는 2015년 18만7000명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지금은 10만2000명에 불과하다. 8만명 넘게 줄었다. 2018년 최저점(8월 10만5000명) 때보다 적다. 조선업계가 추산한 부족 인력은 내년 4분기까지 최대 8300명이다.
노동법에 발 묶인 조선업계
조선 협력사도 인력난 극심 발 동동
사고, 자연재해로 조업 중단 잦고
주 52시간제에 묶여 특근 원천 봉쇄
노동자 임금 하락, 납기 차질 벌금
“조선업, 인력난에 도태 위기 빠져”
조선 협력사도 인력난 극심 발 동동
사고, 자연재해로 조업 중단 잦고
주 52시간제에 묶여 특근 원천 봉쇄
노동자 임금 하락, 납기 차질 벌금
“조선업, 인력난에 도태 위기 빠져”
하지만 인원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고용 규모가 예전 최대 규모의 70% 선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며 “최대 인원을 20만명으로 잡으면 14만명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문위원은 “이대로 가면 조선업이 기술력이 아니라 인력 부족으로 도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고 말했다.
조선산업 현장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조용수 현대중공업 전무는 “얼마 전 기술생(120명)을 모집했는데, 겨우 정원을 채웠다. 추가 모집을 하는데, 청년들이 올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술생은 2~3개월 과정으로 선박건조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교육받는 동안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주거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훈련수당을 지급한다. 교육이 끝나면 협력회사에서 일한다. 어느 정도 근무하면 소정의 채용 절차를 거쳐 현대중공업으로 입사할 기회도 주어진다. 대기업으로의 취업 사다리까지 제공되는 까닭에 2010년까지만 해도 기술생 응시 과정은 치열했다. 지금은 정원 채우기도 버거운 상태다. 이영덕 현대중공업 상무는 “현재로썬 협력업체의 생산인력 확보가 제1 미션”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저가 수주와 노동법·정책이 원인으로 꼽힌다. 저가 수주로는 인건비를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자니 수주 가격을 확 올릴 수도 없다. 일감을 중국에 다 뺏길 위험이 있어서다. 무엇보다 노동 정책과 노동법을 비판하길 주저하는 현장 관계자는 없다. 시장과 호흡하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성 정책’이 조선업 노동시장을 어그러뜨리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조 전무는 “특근이 줄면서 500만원 월급이 400만원으로 20% 넘게 감소했다. 여기에다 중대 재해와 관련, 당국이 사고와 무관한 건조 작업까지 중단시켰다. 협력업체 근로자 월급이 확 줄 수밖에 없다. 태풍이나 너울·우천 때도 일을 못 한다. 조업이 중단되면 추후 특근이나 야근으로 부족한 조업 과정을 보충했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다. 주 52시간이 되면서 그것도 못 한다. 납기일을 못 맞추면 페널티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금 개념으로 임금보전을 고려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못 된다.
조선산업 노동시장은 아수라장이다. 아예 퇴사하고 배달업이나 건설현장으로 옮기는 근로자가 부지기수다. 협력업체의 일당은 13만~14만원인데 비해 건설노임은 17만~20만원에 이른다. “기술을 배우던 청년도 반도체 공장 증설과 같은 대규모 건설현장이 생긴다는 말이 나면 우수수 빠져나간다. 기술 축적이 될 수가 없다. 현장에선 조선제조업종은 이미 끝났다고 본다.” 현대중공업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