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80석 거여 독주 체제로 개원한 이래 60차례 열린 본회의에서 1000건의 법안이 가결되는 동안 부결된 것은 이 법안이 유일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한병도 원내수석)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같은 취지의 법안들이 지난 5~6월 쏟아진 뒤 대안 마련 과정을 거쳐 여야 합의로 7월15일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8월24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초고속으로 통과했던 터라 부결은 더 의외였다.
엇갈린 ‘사법개혁’ 동지들
무너진 법원행정처의 숙원
법원의 우려는 변호사 시험 성적 우수자와 로클럭(재판연구원) 출신자들의 누수 현상에 놓여있다. 익명을 원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지금도 변시 성적 우수자들은 경력 요건이 없는 검찰이나 고임금을 보장하는 대형로펌을 선호한다”며 “요건이 10년 경력으로 강화되면 젊고 우수한 인재들이 더는 판사를 지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걱정은 일부 법사위원들을 움직였다. 7월 15일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이수진 의원은 “(임용기준 완화가) 재판서비스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법관 신뢰도도 떨어질 것이 걱정”이라면서 “현실적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찬성표를 던진 한 법사위원은 “10년 경력 변호사는 로펌에서 ‘파트너’급으로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연봉도 적고 노동강도는 센 판사로 전직하려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몇이나 되겠느냐”며 “사법개혁의 취지가 흔들릴 수 있지만 현실적 문제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이탄희의 친정 저격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이 법안을 8월 처리 주요 법안 리스트에는 올렸지만 당론으로 채택하진 않았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법조 현실은 깊이 이해하는 의원이 적은 데다 의견도 분분해 당론으로 채택하긴 적절치 않았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열어놓은 공간 속으로 반대 행렬을 이끈 건 이탄희 의원의 친정 저격이었다. 본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이 의원은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지난달 31일 본회의에서도 반대 토론에 나서 “임용 경력을 5년으로 퇴보시키면, 법원은 변호사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들을 로클럭으로 ‘입도선매’하고 대형로펌은 향후 판사로 점지된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 개정안이 공론화 절차 없이 3개월 만에 본회의장에 올라오는 특혜를 누린 것은 법원행정처 현직 판사들의 입법 로비 덕분”이라며 “‘양승태 법원행정처’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라고 주장했다. 반대표를 던진 한 초선 의원은 “법조인이 아니라면 관심을 갖기 어려운 법안이지만 ‘양승태 사법 농단’이 떠올라 찬성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법안이 부결되면서 현실적 숙제는 그대로 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선 의원은 “재판의 질은 국민들의 권리 보호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경륜과 실력을 겸비한 법조인들을 법원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