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포장도 '급' 있다…마트 진열대가 1년새 바뀐 이유 [플라스틱 어스]

중앙일보

입력 2021.09.03 05:00

수정 2021.09.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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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이마트 수색점에서 판매 중인 추석선물세트. 투명한 페트병 제품들과 스팸이 있다. 스팸 6개 중 4개는 플라스틱 뚜껑이 없었다. 편광현 기자

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이마트 수색점. 입구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추석 선물세트들부터 보였다. 선물세트 속 화장품들은 대체로 주황, 분홍 등 유색 페트병에 담겼다. 하지만 식품 세트에는 비교적 투명한 무색 용기가 많았다.
 
여기에 진열된 CJ제일제당 '백설 카놀라유'는 포장재 몸체가 투명했다. 지난해 이렇게 바꾸면서 재활용 '보통' 등급을 받았다. 그 전에는 녹색 페트병을 써서 '어려움' 등급에 속했다. 목 부분 비닐을 몸체와 같은 페트 소재로 바꾸고, 분리가 쉬운 열 알칼리성 라벨 접착제를 쓰면서 등급이 올라간 것이다. 반면 재활용 등급을 개선하지 않은 다른 회사의 유색 카놀라유 제품엔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작년부터 포장재 재활용 등급 평가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은 이날 재활용 등급 표시에 따른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이 모여있는 대형 마트를 찾았다. 진열대 위 상품들이 1년 새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7회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 의무화 1년, 그 후

페트병·종이팩·유리병· 캔 등 포장재를 배출하는 기업은 지난해 10월부터 제품 판매 시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에 따라 재활용 등급을 무조건 평가받아야 한다. 2019년 법 개정에 따라 계도 기간을 거쳐 이때부터 의무화된 것이다. 등급은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4개로 나뉜다. 어려움 등급을 받았다면 반드시 '재활용 어려움' 글씨를 표기하고, 환경부담금도 최대 30%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려 기업들은 재활용이 쉽게끔 포장재를 개선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5002개 기업이 신고한 포장재 5만2328건 중 재활용 어려움 등급은 40.5%로 여전히 높다. 다만 각각 0.8%, 43.7%, 15.0%인 재활용 최우수·우수·보통 등급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라벨 뗀 생수통, '최우수' 홍보하기도

이마트 수색점에서 판매 중인 무 라벨 아이시스. 뒤쪽에 보이는 라벨 생수통과 달리 재활용 등급 ’최우수‘로 평가 받았다. 편광현 기자

1년 새 마트에서 가장 투명해진 곳으론 음료 판매대가 꼽힌다. 특히 생수는 늘어선 제품의 절반가량이 무색·무라벨 제품이었다. 이날 마트에 있던 무(無)라벨 아이시스는 재활용 용이성 등급 평가 '최우수'를 획득했다는 홍보 문구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기존에 판매하던 아이시스 라벨 제품은 '보통' 등급이었다. 역시 최우수 등급을 받은 무라벨 백산수는 "(라벨을 떼면서) 연간 60t 이상의 라벨용 필름을 절감한다"고 홍보했다.


칠성사이다, 밀키스, 트레비 같은 음료수 용기도 무색 페트병으로 속속 변하고 있다. 이 페트병들은 모두 재활용 어려움 등급이었지만 색깔을 바꿔 보통으로 급이 달라졌다. 캔커피 칸타타는 비닐 라벨을 없애는 대신 캔 몸통에 라벨을 인쇄하면서 '우수'를 받았다.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유리병에 에코탭이 붙은 라벨이 부착돼있다. 편광현 기자

트레이 없애고 반쪽 된 김, 화장품도 변신

식품 판매대 곳곳에선 포장재의 친환경 변화가 눈에 띄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김 코너에는 우수 등급인 '양반김 20봉 노 플라스틱 트레이' 제품이 진열돼있었다. 플라스틱 트레이를 아예 없애고, 제습제인 실리카젤도 제거했다. 기존 제품보다 부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자 묶음 포장은 플라스틱 밴드 대신 종이테이프를 감는 방식이 눈에 띄었다.

똑같은 김 20봉이 담긴 김 포장 두 가지가 함께 진열돼있다. ‘노 플라스틱 트레이’ 제품(왼쪽)과 일반 제품. 편광현 기자

재활용이 어려워 '민폐 용기'로 불리는 화장품 진열대도 변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포장재조합)에 따르면 화장품 업계는 플라스틱, 펄 실크 등 화려한 소재로 만들던 받침대를 종이로 바꾸고 있다. 비누를 감싸는 비닐 소재도 재활용이 쉬운 폴리에틸렌(PE)으로 속속 변경하고 있다. 내부 플라스틱 트레이를 투명한 색상으로 변경한 제품들이 '어려움'에서 '보통' 등급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건강기능 식품 판매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형 마트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화장품 선물세트. 편광현 기자

커피·맥주는 여전히 '재활용 어려움' 다수

반면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여전히 많은 곳은 주류 판매대다.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한 갈색 맥주병은 대부분 브랜드에서 '재활용 어려움' 글자가 뚜렷했다. 하늘색 유리를 사용해 재활용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진로이즈백 등 유색 소주병도 눈에 띄었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투명 페트병이 직사광선을 전혀 막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어 (병 교체가) 발효 식품에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느라 개선이 늦어졌다. 조만간 맥주 갈색 페트병도 무색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모두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표시하고 있는 시중 맥주 페트병 5종. 편광현 기자

음료 판매대에도 재활용 어려움 표시 상품이 있었다. 스타벅스 스위트아메리카노 등 플라스틱 통에 담긴 커피 상품 대부분이 그랬다. 플라스틱 일회용 빨대가 붙어 있고, 금속 혼합 종이가 용기에 부착됐기 때문이다.
 
재활용 등급제는 기업의 전유물은 아니다. 최근 시민들 사이에선 환경을 생각하는 '탈(脫) 플라스틱' 소비가 늘고 있다. 친환경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 외에 포장재 재활용 등급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웹사이트에서 등급별 제품들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환경부 고시에 따라 포장재별 등급 기준이 세세하게 정리돼있다. 고은경 한국환경공단 제품EPR운영부 과장은 "기업들은 새로운 포장재가 나올 때마다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재활용 등급제가 기업들이 재활용에 신경 쓰는 인센티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급 개선보다 플라스틱 배출량 감축 중요"

전문가들은 의무화 시행 1년을 앞둔 재활용 등급제가 정착해 가는 것에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다만 "재활용보다는 플라스틱 양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목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뚜껑 스티커가 있는 주스 제품과 없는 제품. ‘아침에주스’는 스티커를 떼는 대신 플라스틱 병에 로고를 새겨넣었다. 편광현 기자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를 의무화하는 건 좋다고 본다. 하지만 '재활용 최우수'가 플라스틱 사용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면서 "최우수 등급을 받는 기업도 플라스틱 양을 얼마나 줄여가는지 집중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재활용 등급에 따른 기업 대상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더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를 여전히 많이 배출하는 화장품, 주류 업계에는 소명을 요구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포장재조합은 2025년까지 재활용 어려움 등급 포장재를 20% 아래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자발적 변화가 필수적이다. 김성태 포장재조합 재질관리팀장은 "기업에 포장재 재질·구조 개선 컨설팅을 제공하고 우수 사례를 발굴해 홍보하고 있다. 재활용 등급을 높이는 과정에서 트레이, 빨대, 라벨 등이 없어져 플라스틱 배출량이 줄어드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