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보에 빼곡하게 기록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온전히 실현해주는 연주자를 만난다는 것은 작곡가에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베토벤·쇼팽·리스트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곡을 스스로 초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작곡가는 자신의 작품을 청중에게 전달해주는 연주자에게 상당히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창작과 연주 준비 과정에서 연주자와 많은 소통을 하며 완성된 ‘새벽까지’는 이신우의 새로운 음악 세계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음색의 폭넓은 스펙트럼이 치밀하게 활용되면서, 사운드의 대조와 음향의 잔향이 나타나는 이 소나타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두 악기는 동일한 모티브를 공유하며 음악적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유니즌으로 완전히 화합하였다. 조성과 무조성을 오가며 비루투오소적 테크닉과 침묵의 대조가 나타나는 대서사의 마지막은 친숙한 조성적 선율로 마무리됐다. 새벽, 동이 트기까지의 갈등이 평안하게 해결되는 느낌을 주었다.
이 방대한 곡을 스티브 김은 완전히 몰입하여 거의 암보로 연주하였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음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음향의 덩어리를 강렬하게 표출하였다. 긴 시간 작곡가와의 소통을 통해 작품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작곡가가 구축한 진지하고 치밀한 세계가 연주자에 의해 완벽하게 재현되는 이런 공연이 앞으로도 많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