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는 이 기사에서 “한국군이 마을에 오면서 어머니, 누나, 남동생과 친척 등 다섯명을 잃었다”는 베트남 중부의 퐁니·퐁넛 마을의 생존자 응우옌 니 탄(61)의 얘기를 알렸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민간인 피해 사건을 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응우옌은 “한국군이 우리 마을에 왔던 그날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남한 정부는 우리 마을을 방문한 적도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단 현지에선 한국군에 민간인까지 피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NYT가 전한 당시 미군 조사에 따르면 미군 해병대와 남베트남 민병대는 꽝남성 디엔반에서 작전 중, 퐁니·퐁넛 마을에서 오두막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해당 마을로 향했다. 한국군에게 부상을 당하고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돕기도 했다. 이어 퐁니 마을에 도착하자 머리에 총을 맞은 어린이와 임산부, 아직 살아 있는 채로 가슴이 잘린 여성 등을 포함해 시쳇더미를 발견했다. 조사단 중 한 명은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70명 이상의 마을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 4월 미군 수사관들은 “전범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베트남에 주둔 중이던 채명신 중장(1926~2013)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채 장군은 “학살은 공산주의자들이 꾸민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참전용사 류진성 씨는 “베트남전 참전 해병대는 (한국군에 해를 입힌) 작은 화재라도 발생 시, 발원지를 추적해 발견된 모든 것을 파괴해 비무장 민간인을 포함해 적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류씨는 당시 마을에 무장한 남성은 없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