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성수의 미래를 묻다

[박성수의 미래를 묻다] 세계가 뛰어든 양자컴퓨터 경쟁, 꿈 같지만 가야할 길

중앙일보

입력 2021.08.23 01:33

수정 2021.08.23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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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미래

박성수 ETRI 양자기술연구단장

고교 시절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다. 1930년대 닐스 보어·슈뢰딩거·파울리 등 양자역학을 처음 만들어 낼 당시 격동적 학문의 변혁기때 물리학자들의 무용담이었다. 그렇게 처음 접한 양자역학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이후 양자컴퓨팅이 나왔고 내가 직접 연구개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6년 말, 미국 뉴욕주 요크타운하이츠에 있는 IBM연구소를 방문해 말로만 들었던 양자컴퓨터를 직접 보게됐다. 앞서 그해 5월, IBM은 5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인터넷 접속을 통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었다. 인터넷 서비스 중이라 내부를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첫인상은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었다. 흰 드럼통처럼 생긴 섭씨 -273.1도의 극저온 냉각기, 그 안의 초전도 양자칩. 양자칩을 제어하고 양자상태를 준비하고 판독하기 위해 전기신호를 발생하는 수많은 전자장비와 수십 가닥의 전기신호선 다발 등등….  좋게 보자면 멋진 금으로 만든 대형 샹들리에 같기도 했다. 당시 IBM 담당자는 기술개발 로드맵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큐비트 개수를 수십 개 정도로 늘리고, 오류를 정정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추가할 것이라 말해주었다. 이로써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실제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게 잊히지 않는다.
양자컴퓨터, 슈퍼컴의 1억배 속도
이진법 비트 아닌 큐비트 원리
미국·중국 등 주요국 사활 건 경쟁
기술격차 2~3년, 넘어야할 산 많아
 
양자역학 원리, 정보처리에 직접 사용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의 IBM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상업용 양자컴퓨터 ‘IBM Q 시스템 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양자컴퓨터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정보처리에 직접 사용하는 미래형 최첨단 컴퓨터라 보면 된다. 기존 컴퓨터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슈퍼컴퓨터보다 무려 1억 배나 빠른 컴퓨터라고 한다.  그만큼 강력한 도구가 되니까 응용도 다양하다.
 
양자컴퓨터는 우리가 쓰고 있는 일반 컴퓨터와 체계가 다르다. 일반 컴퓨터는 정보표현의 단위가 0과 1의 이진법을 활용한 비트(bit)가 기본 요소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0인 양자상태와 1인 양자상태가 1개 큐비트(quantum bit, qubit)에 모두 담기게 된다. 이를 ‘중첩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큐비트가 늘어나면 적은 양자비트로도 모든 상태를 나타낼 수 있어서 연산을 처리하는 양도 대폭 커지게 된다. 또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큐비트 사이에는 얽힘이라고 부르는 상관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큐비트는 관측하는 순간, 비트 형태로 바뀌게 되고, 미지의 큐비트는 복사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큐비트가 갖는 계산성과 보안성은 비트와는 차원 다른 강점이다. 비트컴퓨터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은 나노 수준으로 점점 작아지는 집적회로 공정기술에 의한 것이었으나 조만간 그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컴퓨터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비트의 시대를 넘어 양자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의 계산을 비교해 보면 비트 단위 이진법을 이용한 현재 슈퍼컴퓨터의 정보표현 방법은 10개 비트의 모든 경우를 병렬처리로 연산할 때 1024개의 비트가 필요하다. 이에 반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로 10개만 있으면 된다. 복잡한 물질의 성질을 알아내기 위한 계산에서는 슈퍼컴퓨터로는 알고자 하는 성질에 대해 모델링을 한 후 실제 계산해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 반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수만 충분해지면 모든 것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많은 학자들이 활발히 연구를 진행해왔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의 발달이 가속화하고 ‘양자컴퓨팅’에 대한 잠재력이 알려지면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머신러닝과 최적화 등에 뛰어난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교통혼잡 문제의 해결, 신약물질의 탐색, 금융 포트폴리오의 수립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21세기 현존하는 최고 과학기술의 집약체이자 최고의 미래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시뮬레이션·암호해독·인공지능 등에 용이
 
양자컴퓨터의 대표적인 기능으로는 시뮬레이션을 들 수 있다. 촉매의 전자거동, 분자 내 원자간 거리 등을 양자 상태로 시뮬레이션하는 데 양자컴퓨터를 쓰면 되지만 비트컴퓨터로는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암호해독 분야다. 기존 암호체계는 비트 컴퓨터로 해결할 수 없지만, 양자컴퓨터는 암호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문제의 해결 분야다. AI의 대부분 문제가 분류(classification)와 군집화(clustering)인데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비트 컴퓨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보다 빠르다는 ‘양자 우월성’은 2019년 7월, 구글의 53큐비트 초전도양자컴퓨터를 사용한 무작위 양자회로 방법과 2020년 12월 중국과학기술대의 50개의 압착양자 광원을 사용한 보존샘플링 방법에 의해 증명되었다. 2019년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는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칩 600만 개가 장착된 IBM 서밋이다. 이 슈퍼컴으로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는 고작 53개의 큐비트 1개의 칩만으로도 3분 20초 만에 풀어냈다. 이 성과는 네이처 논문으로 출판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인정받았고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양자컴퓨터가 열 수 있는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광합성의 작동 원리를 밝혀 빛·물·공기만으로도 녹말을 무한히 생산, 지구촌 식량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신약이나 소재 개발에 일일이 화학적 합성이나 제조를 해보지 않아도 신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 10억 개의 뎅기열 치료제 후보물질 중 유효물질을 찾아내는 데 5분이 걸렸다는 사례도 있다. 국방이나 대테러 정보 암호해독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비트컴퓨터에 의한 지능화 혁명의 시작이라면, 양자컴퓨팅은 인공지능이나 딥러닝 알고리즘 등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한 지능화의 완성을 가져올 것을 예상해 본다.
 
중국, 유럽 추월하고 미국과 대등한 수준
 
이 때문에 세계 주요국들은 양자컴퓨터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표적 국가가 미국이다. 구글이나 IBM은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연구성과를 크게 보도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대부분 비공개로 한다. 기술개발 로드맵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양자컴퓨터 관련 프로젝트에는 연구원 참여도 까다롭고 심지어 미국 국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유럽과 경쟁을 했다. 초전도회로(IBM, 구글, QCI)와 이온덫(IonQ, 하니웰)·양자점(인텔)·중성원자(하버드대)·양자광학(Psi퀀텀) 등이 대표적 연구분야다.
 
중국의 추격도 만만찮다. 최근 5년 전부터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암호해독을 염두에 두고 유럽보다 더 많은 투자와 연구를 통해 초전도회로와 양자광학기술 등에서는 유럽을 추월하고 미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와있다고 알려졌다.
 
유럽은 1930년대 양자역학의 발상지이다. 유럽은 이온덫(옥스퍼드대, AQT)·양자점(델프트공대, UCL대)·초전도회로(델프트공대, 율리히연구소)·양자광학(브리스톨대) 기술에서 뒤쫓고 있다. 일본(이화학연구소)·호주(뉴사우스웨일즈대) 등도 큐비트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한국도 초기단계이지만 양자컴퓨터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큐비트부터 맨 위의 양자 프로그램 언어까지 연구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정보보호와 국방 등 공공분야에 적용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NV 다이아몬드 방식의 큐비트를 만들고 있고, 표준과학연구원은 초전도 큐비트, 중성원자 큐비트를 연구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양자정보통신기술 글로벌 선도국가 진입을 비전으로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 전략’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양자암호통신과 양자컴퓨팅, 양자센서 3개 기술에 투자 근거를 마련했다. 올해엔 양자기술 투자전략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실제 작동하는 50 큐비트급 양자컴퓨팅 기술을 오는 2024년까지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2019년, 중국이 올해 6월 개발에 성공한 수준이다. 앞으로 3년 후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한다면 선진국과의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발표에 의하면 미국과의 기술격차는 2~3년 정도다. 세계적 선도 연구그룹과 경쟁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수백만 개 큐비트를 집적화하고 동작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큐비트 에러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도 필요하다. 반드시 가야할 길이고, 갈 수 있는 길이다.
 
키워드
큐비트(qubit)
양자 컴퓨터로 계산할 때의 기본 단위이다. ‘양자비트’(quantum bit)라고도 한다. 일반 컴퓨터가 정보를 0과 1의 비트(bit) 단위로 처리하고 저장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정보를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 단위로 처리하고 저장한다.
◆박성수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재료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입사, 2019년부터 양자기술연구단을 맡고 있다. 현재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전략계획위원회 부의장과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표준양자백서발간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