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인(Shein)을 알고 난 뒤로는 H&M 쇼핑을 끊었어요. 똑같은 상품을 훨씬 더 싸게 살 수 있거든요.”
홍콩대 학생 아누슈카 사찬(20)은 지난 16일(현지시간) CNN의 ‘아마존만큼 인기 있는 중국의 미스터리 앱’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중국 SPA(제조유통일괄) 패션앱 쉬인을 켠다. 출석 체크를 하고, 동영상을 보기만 해도 적립금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바일 게임만큼 중독적”이라고 했다.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 패션 시장을 주름잡던 SPA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자라와 H&M 등 유럽 강자를 밀어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중국 광저우에서 2008년 출발한 비교적 신생 업체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SPA 매출이 20~30%씩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쉬인의 매출은 지난해 전년보다 두 배 늘어나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기록했다. 8년 연속 매년 100% 이상씩 성장해왔다. 블룸버그는 비상장인 쉬인의 가치가 300억 달러(약 35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7000원짜리 티셔츠로 자라·H&M 위협
가장 큰 매력은 초저가다. 포브스에 따르면 제품 평균 가격은 상의 5.99달러(약 7000원), 원피스 9.99달러(약 1만1800원) 수준이다. ‘쉬인에서 280달러(약 33만원)를 쓰면 1년 치 옷을 살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CNN은 “쉬인은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여성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자라, H&M과 경쟁하지만 온라인 업체이기 때문에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제품 판매가 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적은 돈으로 다양한 패션 상품을 즐기고 싶은 10대가 열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신상품만 수천개
미국 Z세대를 사로잡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을 공략한 마케팅도 성공 요인이다. 쉬인은 인플루언서에게 옷을 제공하고, 인스타그램·틱톡 등에 포스팅할 경우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셜미디어에 노출을 늘리고 있다. ‘e커머스계의 틱톡’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인플루언서마케팅 업체인 하이프오디터에 따르면 쉬인은 지난해 틱톡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브랜드로 4000명 이상의 인플루언서가 쉬인을 언급했다. 패션을 좋아하는 미국 10·20세대 여성이라면, 쉬인을 접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미·중 무역 전쟁 수혜로 관세 부담 없어
보통 패션 수출회사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대량 배송해 관세를 내야 하지만,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쉬인은 이를 부담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미국의류신발협회(AAFA)에 따르면, 쉬인은 다른 수출 의류업체 보다 약 24%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쉬인 돌풍에 증권업계는 ‘기업공개(IPO) 대어’가 나타났다고 환호했지만 극복할 과제도 있다. 디자인 도용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근 신발업체 닥터 마틴과 청바지업체 리바이스는 쉬인이 디자인을 무단 사용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싼 이유 있어…노동력 착취 의혹”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벤처캐피탈 업계는 쉬인이 패스트 패션의 미래라고 칭송하지만, 저렴하고 빠른 공급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국가 간 관세 정책, 수십년간 지속된 패스트 패션의 환경 파괴 문제, 비용 절감을 위한 불법 노동력 착취 등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