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이 '슬의생' 했나…그 방송뒤 장기기증 등록 11배로

중앙일보

입력 2021.08.20 17:52

수정 2021.08.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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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3화 중 한 장면. 장기를 이식받게 된 아이의 부모님이 담당 교수에게 감사를 표하지만 교수는 "감사는 본인이 아닌 힘든 결정을 해주신 기증자 가족 분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재능나눔 작가 훋욱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냥 ‘슬의생’ 끝나자마자 바로 노트북 켜서 신랑이랑 같이 (장기기증) 신청했어요.”

 
지난 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장기기증 희망등록’ 인증 글이다.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슬의생) 시즌 2’를 보고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드라마가 장기이식 및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비중 있게 다룬 뒤 각종 커뮤니티에는 “슬의생에서 매번 장기기증 환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에 장기기증을 신청했다” 등의 글이 자주 올라왔다.
 

“동기간 대비 3배, 11배 증가”

그래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1일부터 약 6주 동안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한 사람은 1만 6231명이다. 지난해 동기간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수인 5576명과 비교하면 3배가 넘게 증가했다. 특히 장기기증 절차가 비교적 상세히 설명된 슬의생 7화가 방영된 후 일주일 동안 7042명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배가 증가했다.  
 
시청률 12%대를 기록한 5화(7월 15일 방영)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11살 소년의 심장을 이식받게 된 은지의 엄마(배우 이은주)가 담당 의사(배우 정경호)에게 한 말은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에게는 너무 큰 축복이고 기적이지만 다른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 불행인데, 매일 밤 내가 그러기를 바란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이승아(34)씨의 딸 리원(6)양은 지난 2016년 간을 이식받았다. 왼쪽은 당시 이식 수술을 준비하던 리원양의 모습. 리원양은 현재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오른쪽). 이승아씨 제공

 
딸이 장기기증을 받은 이승아(34)씨는 드라마 속 사연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딸 리원(6)양이 생후 78일 때 ‘담도폐쇄’라는 희귀난치병을 판정받으면서다. 이씨는 “황달이 심하고 복수가 많이 차면서 혼자 앉아있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며 “간절하긴 하지만 누구의 죽음에서 오는 행운이기 때문에 바라는 것 자체가 죄송하고 또 죄송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런 세밀하고 내밀한 감정까지 기획한 것인지 깜짝 놀랐고 공감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딸이 간을 이식받은 후 “기증자분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조금이라도 갚고자 저도 바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22년 만에 만난 어머니의 장기 기증 “오히려 감사”

그래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처럼 장기기증을 하거나 받은 사람의 가족이 장기기증을 결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난 2003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친어머니를 22년 만에 찾은 이상영(47)씨는 7년 만에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이씨는 “처음에 기증 권유를 받았을 때는 화를 냈다”며 “안 그래도 힘들게 만난 어머니인데 선뜻 수술을 두 번 하시게는 못하겠더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씨에게는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장기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머니의 장기로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들었다”며 “생전에 봉사를 많이 하셨던 분이라 저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씨 부부는 바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하 본부)에 후원도 하고 있다. 이씨는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는데 늦게나마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본부 “유가족에게 위로, 이식인에게 희망 전하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 등록 소감 캡처

본부 홈페이지 ‘등록 및 후원 소감’을 적는 공간에는 슬의생을 보고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는 소감이 10여개 등록됐다. 류현주씨는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슬의생을 시청한 후 결심하게 됐다”라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치 있는 선택으로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싶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재은씨는 “선뜻 등록하기까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슬의생과 유퀴즈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나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보며 드디어 결정했다”고 적었다.
 
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자가 연일 감소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생명 나눔의 가치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사연이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에게 위로를, 이식인에게는 희망을 전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