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스스로 강조해온 ‘가치외교’에도 정면으로 반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아프간 철군 결정을 고수하는 이유는 결국 미국에 대한 위협 재평가에 따른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동에서 발을 뺀 뒤 더 큰 위협인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동북아 지역 내 세력 균형에 대한 문제로, 한국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입지와도 직결된다.
'제2 베트남전' 부담에도 아프간 철군
미국의 위협, 중동 보다 중국 판단
中 견제 인도태평양에 전력 투입
'인계철선' 주한미군 성격 변화 가능성
특히 국방부는 “중국의 미사일 정확성이 높아지며 태평양 지역 내 미군 배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역내 병력을 확산 배치하고, 강화하고, 동맹이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밀어붙여야(push) 한다”고 밝혔다.
이란과 핵 합의 복원 추진과 맞물리면서 중동 지역에 대한 자원 투입을 줄이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중국을 압박하는 게 미국의 ‘큰 그림’인 셈이다.
이는 인도ㆍ태평양 지역 내에서 ‘동맹의 역할’에 대한 요구 또한 지금보다 한층 강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한국이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 이미 미국 내에서는 주한미군을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역할로 인식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현재 미국 상원에서도 대중 견제 전략 수립을 논의 중인데, 그 핵심 중 하나가 동맹의 안보 역량 강화”라며 “단순한 병력 증강보다는 주한미군이 운용할 수 있는 전략 자산 투입 등을 통한 역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안다”고 소개했다.
한ㆍ미 동맹의 근간인 상호방위조약의 범위 자체가 한반도를 넘어 인도ㆍ태평양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아프간에서 철수한다고 해서 해당 군 병력을 아시아로 옮겨 투입하는 식의 기계적 재조정은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입장에선 군사적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중국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본격화했다는 의미가 크다”(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는 것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주둔 미군의 역할이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또 “미국 입장에선 동맹의 ‘헌신’에 대한 평가, 속된말로 이용 가치나 중동 지역 정세 등에 따라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규모를 유동적으로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을 보다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앞서 미 워싱턴포스트(WP)도 지난 2월 바이든 행정부의 해외 주둔 미군 운용 방향과 관련한 분석 보도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소규모 병력을 더 많은 기지에 배치하는 경향성을 보일 것 같다. 경쟁국이 제3국에 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이 세계적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데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가능성이 큰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 국방부의 글로벌 포스처 리뷰 자체가 대중 견제를 위한 군사력 운용을 보다 정교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아프간 철군도 이런 흐름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이제 점진적으로 주한미군을 북한 상대용 붙박이 군이 아니라 지역 정세에 따라 순환시킬 수 있는 군대로 돌릴 수 있다는 부분도 염두에 두고, 안보 공백까지 가정해 미리 자강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프간 정세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의도했던 선택과 집중이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탈레반 정부 수립으로 오히려 미국이 그만큼 쇠퇴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중동 정세가 악화하거나 오히려 중국이 아프간에 개입하게 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원했던 대로 깨끗하게 발을 빼지 못하고, 원래 의도와는 다른 그림으로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