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도쿄올림픽 유도 국가대표 조구함(29·KH그룹 필룩스)과 안바울(27·남양주시청)은 손에 든 메달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구함은 대회 남자 100㎏급 은메달, 안바울은 남자 66㎏급 동메달을 따냈다. 조구함과 안바울은 도쿄에서 금메달 1개 이상을 노렸던 한국 유도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도쿄올림픽 은·동 딴 ‘유도 에이스’
조구함, 결승 한판패 후 상대 축하
쥐난 상대 기다려준 스포츠맨십도
안바울 “창피하지 않다, 3년 뒤 금”
안바울은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창피하거나 미안한 마음은 없다. 최선을 다해서다. 나의 두 번째 올림픽은 후회 없이 즐긴 대회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구함은 “올림픽 전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대회 후 사라졌다. 부담을 털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덕분이다. 어디에서나 ‘은메달을 따서 행복하다’고 당당히 말한다”고 밝혔다.
조구함과 안바울은 신인 시절 태릉선수촌 룸메이트였다.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는 3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이 기간 살을 찌우고 빼는 고통도 함께 나눴다. 안바울은 60㎏급에서 66㎏급으로 한 체급을 올렸고, 조구함은 100㎏ 이상급에서 100㎏급으로 내렸다.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체급을 변경한 선수는 두 사람뿐이다. 조구함은 “체중 조절 자체도 고통이지만, 체급을 바꾼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동반된다. 바울이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잘 버텨냈다”고 떠올렸다.
두 사람은 도쿄에서도 찰떡 호흡을 보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점을 활용했다. 조구함은 “경기 중 공격 기회가 생기면 선수석에 앉아 있는 바울이에게 ‘지금 공격해’라고 외쳐달라고 부탁했다. 관중이 없다 보니 바울이 목소리가 또렷하게 잘 들렸다.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메달만큼 주목받은 것은 두 선수의 스포츠맨십이었다. 조구함은 결승에서 일본의 에런 울프(25)에게 골든 스코어(연장전) 접전 끝에 한판패를 당했다. 조구함은 울프와 한 차례 대결해 이긴 적이 있어서 자신감이 있었다. 패배가 더 쓰라렸다. 그러나 조구함은 울프의 손을 들어 승리를 축하했다. 이 모습은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조구함은 “우승하면 지금까지 했던 고된 훈련이 머리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감격해서 우는 울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겼어도 저랬을 것 같아서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조구함은 준결승에선 조르지 폰세카(29·포르투갈)가 경기 도중 손에 쥐가 나 고통스러워하자,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를 본 팬들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며 칭찬했다. 조구함은 “상대가 약점을 보일 때 공격했다면 손쉽게 이겼겠지만, 그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바울은 리우올림픽 결승에선 당시 세계 26위 파비오 바실레(이탈리아)에게 패한 뒤 서럽게 울었다. 세계 랭킹 1위였던 안바울은 한 수 아래 상대에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번엔 달랐다. 지난 대회 성적에 못 미친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시상대에서 활짝 웃었다. 안바울은 “이번에도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슬퍼서 그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다시 한번 올림픽 시상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구함과 안바울은 올해까진 휴식과 치료를 병행하고 내년 매트에 복귀할 예정이다. 다음 목표도 생겼다. 안바울은 “파리올림픽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땐 내 기술과 경험이 정점을 찍을 것이다. 은과 동은 있으니, 금메달을 목에 걸고 멋진 마무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조구함은 “은메달이 좋은 건 아직 금메달이 남아서다. 은메달 그 자체로 기쁘지만, 동시에 동기부여도 된다. ‘나라를 구하라(조구함)’는 뜻의 이름처럼 한국 유도에 금메달을 안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