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효도’는 각자가 알아서 효도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사원 이모(36)씨는 시댁에 거의 안 간다. 연간 2~3회 안부 전화를 한다. 대신 자기 부모는 잘 챙긴다. 남편(40)도 비슷하다. 처가에 잘 안 가고 생일 등을 안 챙기지만 자기 부모에게 선물을 주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이씨는 신혼 때 시어머니가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완곡하게 거부했다. 이씨는 “효도는 셀프”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우리 부모한테는 제대로 안 하면서 왜 시부모 챙기기를 강요하나. 자기가 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내 부모는 내가…” 셀프수발 확산
정년퇴직 아들들 참여도 늘어나
수발자, 배우자·딸·아들·며느리 순
“가족에서 지역돌봄으로 바꿔야”
전남에 사는 50대 여성 이모씨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92)의 주수발자 역할을 한다. 어머니가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고 병원에 가거나 나들이할 때 동행한다. 서울에 사는 오빠 이모(63)씨는 한두 달마다 내려온다. 오빠 이씨는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싶지만, 아내(59) 반대에 부닥쳐있다. 아내는 2년여 전 친정어머니가 숨지기 전까지 간병하고, 자주 방문했다. 셀프 수발의 예이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문현아 책임연구원과 차승은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부교수가 지난해 3월 발표한 ‘가족의 노인 돌봄 경험과 딜레마’ 논문을 보면 가족 돌봄(27명)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부모님이 아프면 딸이 하는 게 맞아요. 왜냐하면 며느리의 부모가 아니잖아. 며느리에게 뭘 요구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아버지를 돌보는 딸(53)의 말이다. 다른 수발자 딸(50)은 “그걸(수발)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중략) 네 부모는 네가 챙기고 내 부모는 내가 챙기고,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윤경 노인정책연구센터장은 “며느리 수발이 많이 감소하고 딸이 많이 늘고 있다. 아들도 부모 돌봄에 꽤 참여한다”며 “부부가 각자의 부모를 수발하는 식으로 ‘효도도 셀프’로 달라진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펴낸 ‘가족 내 노인돌봄현황과 지역사회 통합돌봄 지원방안’ 연구보고서에도 가족 돌봄의 문제점이 담겨있다. 정년퇴직한 아들이 주수발자로 나선다. 어머니를 수발하는 아들(62)은 “제가 정년퇴직했고,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어머니 집에서 잔다”고 말했다. 비혼(非婚) 딸이 수발자로 떠밀리기도 한다. 암 환자 아버지를 모시는 딸(41)은 “언니·오빠가 멀리 산다. 제가 미혼이라서 (수발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한 명만 좀 고생하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돌보는 65세 딸은 “며느리들이 신경을 안 쓴다. 어머니가 어떤 치료 받는지 관심 밖이다. 아들은 가끔 외식 대접하면 끝”이라고 말한다. 연구팀은 “마지막 돌봄 보루인 딸”이라고 평가했다.
주수발자들의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돌보다 우울증이 생겼고 조울증으로 악화했다. 가족 갈등은 예사다. 여성정책연구원 연구팀이 노부모 수발자 612명을 인터뷰했더니 36.1%에게 가족 중 부돌봄자, 즉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소위 ‘독박 수발’이다. 문현아 박사는 “딸의 돌봄 책임이 늘면서 ‘돌봄=여성 몫’이라는 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남성 출산휴가·육아휴직 등이 나오면서 아동양육의 남성 참여를 얘기하듯 노인 돌봄에도 남성 참여를 어떻게 확대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박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내실화, 지역사회 통합돌봄 구축 등으로 가족 돌봄에서 사회적 돌봄으로 전환하는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