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폭발에 약발 안 먹히는 가계빚…금리 인상만이 해결책?

중앙일보

입력 2021.08.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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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주모(39)씨는 지난달 지은 지 30년 넘은 서울 도봉구 도봉동 A 아파트(전용면적 111㎡)를 7억3000만원에 샀다. 전세(3억3000만원)를 낀 갭투자였다. 나머지 자금은 부모ㆍ형제에게 2억원을 빌리고, 신용대출로 1억원을 모았다. 주씨 자금은 1억원이 전부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였다. 그는 “지금 아니면 평생 집을 못 살 거 같아 결정했다”며 “오히려 좀 더 서두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빚투와 영끌 속 1분기 가계빚 1765조원 증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영끌과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투자자의 영끌 행진에 수도권 집값 상승세는 다시 불붙고, 가계 빚은 빠르게 늘고 있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695조3082억원)은 한 달 사이 6조2009억원 늘었다. 공모주 청약 이슈가 있던 4월을 제외하면 올해 들어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더욱이 지난달부터 차주별 대출 상환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됐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국내 전체 가계 빚(가계신용)은 1분기 말 기준 1765조원으로 1년 전보다 154조원(9.6%)이나 불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빚 쌓아온 한국

한국 GDP 대비 가계빚, 2007년 이후 35% 포인트 증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의 가계 부채가 전 세계 주요국보다 빠르게 늘면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03.8%로 43개국 중 7위다. 한국 가계 빚은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는 임계치(80%)는 물론 경제 규모를 추월했다.  
지난해 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71%) 대비 약 35%포인트 증가했다. 한국처럼 집값 급등으로 몸살을 앓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빚 증가 속도는 빠르다. 미국은 2007년 98.5%까지 치솟았던 GDP 대비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79.5%로 줄었다. 영국(90%)도 같은 기간 3.2%포인트 감소했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 평균(지난해 말)은 81%로 2007년(82.4%)보다 소폭 하락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대형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디탸바브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집값 붕괴를 경험한 각국 중앙은행은 (가계부채의 위험을) 제대로 인지해 그동안 집값 상승에 면밀하게 대응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타격이 작았던 한국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꾸준하게 가계 빚을 쌓아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집값 잡기’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 점도 한몫했다.  
 

신규 대출 60% 청년층에 쏠려 

사진은 지난달 서울의 한 시중은행 주택자금대출 창구. [연합뉴스]

빚 증가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가계의 빚 갚는 능력도 나빠지고 있다. 가계 소득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170%(금융연구원 자료)에 이른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채무 상환능력이 악화하고 있어서다.  
 
30대 이하 청년층이 영끌과 빚투 열풍 속에 빚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금융권의 신규 대출자 중 청년층 비중이 60%에 육박한다”며 “이들은 (다른 연령에 비해) 상환 능력이 낮아 자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 청년층의 파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8월 금리인상’ 전망 잇따라  

상당수 전문가는 가계 빚과 치솟는 집값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최근 국내외 금융투자기관 역시 잇따라 8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우리금융연구소는 4일 “한국은행이 경기 개선과 주택시장과 연계된 금융 불균형 우려를 고려해 8월 25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투자은행 JP모건은 10월로 예상한 금리 인상 시기를 이달로 앞당겼다. 한은이 8월을 시작으로 올해 4분기와 내년 3분기까지 모두 세 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한두 차례 금리 인상 카드로는 빚 증가 속도에 제동을 걸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 두 번 올려야 1%인데 물가상승률 따지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라며 “빚내서라도 투자하겠다는 영끌 열풍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