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를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제가 DNA 검사도 다 해주겠어요.” 2007년 7월 19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당내 ‘검증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를 향해 “아이가 있다는 소문은 정말 심각한 일이고 천벌을 받을 짓”이라며 “아무리 나를 음해하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 “제가 혹시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 어떻게 하라는 건지….” 2021년 7월 5일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TV토론장에서는 DNA 대신 ‘바지 검증’이 화제였다. 여배우 불륜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이재명 후보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라”(정세균 후보)고 추궁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14년만의 데자뷔다. 네거티브 공세의 양상 및 강도가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이번 더불어민주당 1·2위 싸움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자주 비교된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17대 대선 전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 간 쟁탈전은 20대 대선을 준비하는 이재명·이낙연 두 후보의 싸움과 여러 지점에서 공교롭게 닮아 있다. (편의상 호칭은 ‘후보’로 통일.)
①출신: 주류 vs 신(新)주류
올 초까지 당 대표로 일한 이낙연 후보는 캠프 구성 초기부터 박광온·최인호·홍익표·정태호·윤영찬 등 친문(친문재인) 의원 다수를 자기 사람으로 앉혔다. 반면 여전히 ‘주도야후(낮에는 도지사, 밤에는 후보)’라는 이재명 후보의 경우 당내 비주류로 분류됐던 정성호·김영진·김병욱 의원과 경기도 참모들이 같은 시기 캠프 운영을 주도했다.
②캐릭터: 안정형 vs 돌파형
이에 비해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이명박 후보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고 저돌적인 발언을 즐겼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2007년 8월 6일)를, 이후 본선에서는 “얼굴만 보면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2007년 11월 12일)를 유행어로 낳았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별명을 얻은 이낙연 후보와 ‘사이다’ 이미지를 가진 이재명 후보 역시 MB-박 대결 때와 비슷한 캐릭터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국민이 후보들의 진면목을 볼 것”이란 이낙연 후보 측의 '점잖은' 네거티브 공세에 이재명 후보가 “도서관에서 정숙하라고 소리 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일갈하는 식이다.
③구도: 한때 1위 vs 역전 1위
국무총리 때 40%대 지지율을 형성한 이낙연 후보 역시 올 초 이재명 후보에 역전당했다. 신년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주장한 게 자충수가 됐다.
2007년 이명박 후보에게 최시중 전 한국갤럽 대표가 있었다면 지금의 이재명 후보에게 이근형 전 윈지코리아컨설팅(이하 윈지) 대표가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07년 5월 박근혜 후보 측이 조선일보·한국갤럽의 공동 여론조사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자 최 전 회장은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사직, 두 달 뒤 이명박 캠프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했다.
이근형 전 대표가 2009년 설립한 윈지는 지난해 11월 아시아경제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무당층 24.6%가 이재명 후보를, 15.1%가 이낙연 후보를 지지한다는 결과로 ‘이재명 본선 우위론’을 촉발했다.
④전과·검증단 논란도 판박이
경쟁 과열을 맞은 민주당 지도부는 현재 당 차원의 ‘경선 후보 검증단’을 설치하라는 요구에 직면해있다. 이낙연·정세균 후보 측에서 이재명 후보의 음주운전 전과 횟수 등을 당이 클리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송영길 대표는 5일 “당에서 중간에 개입하면 되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옛 한나라당은 아예 자체 검증위원회를 발족해 청문회까지 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서 “이명박 후보는 전과 14범”이라며 “직접 벌금형 이상의 전과를 당원과 국민 앞에 공개하라”고 압박한 장면이 지금의 이재명 전과기록 공개 논란과 꼭 닮아있다. 2007 경선에서 적나라하게 불거진 ‘BBK 논란’과 ‘정윤회 논란’은 두 후보가 차례로 대통령을 거쳐 퇴임 후 구속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번 ‘이·이(이재명·이낙연) 대전’을 두고도 당내에서 “선을 넘다 보면 본선에서 야당에 발목 잡힐 일이 생긴다”(민주당 재선 의원)란 우려가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 K 소장은 “2007년 당시는 한나라당이 ‘경선=본선’ 공식을 세울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었지만, 현 민주당은 그렇게 본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과거에 대한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