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사이드]‘북한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국정원 분석을 정치가 흔들어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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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새로운 국정원 원훈석을 제막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정원 원훈은 5년 만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교체됐다. 사진 청와대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대한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참으로 나라가 걱정스럽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장이 김 부부장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담화에 동조했다. 그 이유로 핵무기를 거머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장된 비핵화 전술에 대해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안 해줬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북제재를 해제해 대화를 유인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에 눈과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박지원 국정원장, 북한 주장에 동조
김정은 핵실험 ‘안 해주는 선의’ 분석
미국 ‘정보에 정치 자리는 없다’ 소신

영화 ‘내부자들’에서 권력자들이 국민을 폄훼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더욱이 한미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북한이 군사 도발에 나설 것이라며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궤변은 아연실색게 할 뿐이다.
 

북한 당 정치국 회의에서 비판 토론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조선중앙TV.

  
우선 정보기관과 정책부서의 역할조차 모르는 국정원이 됐다. 정보기관은 객관적·중립적·독립적 입장에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제공된 정보는 정책결정자나 정책부서에서 사용 여부를 결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국회 정보위에서 정보기관이 마치 정책결정 기관처럼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금기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장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말도 잘못됐다. 국정원장은 공인이다. 비공개회의라는 핑계도 말이 안 된다. 이제까지 비공개회의 내용이 공개 안 된 적도 드물다. 유출될 것을 전제로 보고한다는 것이 상식이 됐다. 또한, 북한 의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다.   


한·미 해병대 장병이 연합 공지전투훈련 중 상륙돌격장갑차에서 내려 침투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 추가 핵실험 ‘못할까? 안 할까?’

 
지난 3년간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도 않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발사하지 않으면서 선의를 보였다는 분석은 북한의 실제 언행과 일치하지 않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식 해석이기도 하다.
 
북한은 2019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이미 핵보유국이 됐기 때문에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어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북한은 비핵화를 한다면서도 핵무기를 생산하고 신형 ICBM과 북극성 3·4·5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까지 개발 중이다. 이것이 어찌 선의라고 해석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비전문가들이 그렇게 주장하더라도 올바르게 분석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의 분석 의도에 대해 전문가 입장에서 궁금하기만 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에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선 토론에서 ‘북한이 핵실험과 ICBM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이미 개발을 완료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주장한 바 있다.
 

지난 3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 밝히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미 국가정보기관의 정확한 정보메시지를 간파했지만, 트럼프는 정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정치화했다. 마치 자신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중지시켰다고 오판하고 있었다. 모사꾼들과 중재자들의 그릇된 정보를 믿고 싶어했던 것이다.  
 
지난 5월 한국을 찾았던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장(DNI)은 바이든 대통령이 추천한 인물이다. 헤인스는 앞서 1월에 있었던 청문회에서 “정보에 관한 한 정치가 자리할 곳은 없다. 권력에 대해서도 진실을 말하겠다”며 소신 있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기념하는 군 열병식이 평양에서 열린 가운데 신형으로 추정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5ㅅ'이 등장했다. 사진 노동신문

 

미 국가정보국장 “정보에 정치가 자리할 곳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직 동안 자기 뜻과 맞지 않으면 정보기관을 비난하며 이용하려 한 것, 즉 정보의 정치화를 없애기 위해 어느 정파에도 관련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생산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밝힌 것이다.  
 
이제 한·미연합훈련까지도 국가정보기관이 중단하기를 원하는 대한민국이 됐다. 월권행위나 다름없다. 한미연합훈련은 한미동맹과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려있는 안보의 문제이지 북한과의 대화나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한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헌법적 가치 구현을 위한 국가방위훈련의 주권과 관련된 사항이다.
 
지난 6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두 번째로 국정원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박 원장은 업무보고에서 국정원법 개정으로 국내정보업무 폐지, 방첩·대테러, 사이버·우주정보 등 업무개편에 따른 조직체계 재정비, 23년까지 대공수사권의 완전한 이관 등에 대해서 보고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특히 국민의 요구와 정부의 강력한 의지, 전 직원의 노력으로 정치와 완전히 절연하고 북한·해외 전문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며 일 잘하는 국정원, 미래로 가는 국정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보고를 마친 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새로운 원훈석 제막식도 이루어졌다며 공개했다. 대통령은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 달라고 당부했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전직 국정원 직원들은 ‘정치적 이중 행보’라며 분노했다. 결국 국정원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정권과 북한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분노하기 전에 다시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