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공약이 꼭 그런 건만은 아니다. 공약엔 후보 진영의 영혼이 담긴, 그래서 정권을 잡으면 어떤 저항에 부닥쳐도 추진할 게 분명한, 결국 정권의 운명까지 판가름할 킬러 콘텐트도 있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에선 부동산 공약이 그런 사례다.
이미 두 번 부동산 참패한 민주당
대선 주자들 정책차별화는 커녕
한 술 더 뜨는 반 시장 노선 질주
이처럼 부동산 공급은 부족하지 않으며 다만 투기심리가 문제일 뿐이니,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펴면 부동산은 안정된다는 건 좌파의 오래된 신앙이다. 이런 반(反)시장 철학은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주입됐고, 그로 인해 어떤 재앙적 결과가 발생했는지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문 후보가 당선되면 아파트값 폭등은 예고된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당시 탄핵이란 메가톤급 이슈에 가려 문 후보의 부동산 공약에 주목한 유권자는 거의 없었겠지만.
지금 여당이 정권 재창출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파트값 폭등 문제다. 그렇다면 여당 대선주자들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의 부동산 공약을 만드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요즘 여당 주자들이 발표하는 부동산 공약은 오히려 반(反)시장 성향을 더욱 강화하는 쪽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아예 주택 가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며 주택관리매입공사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아파트를 정부미(米)처럼 사들였다가 팔았다 하면서 가격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의 주택명목 시가총액이 5722조원이다. 정부가 50조원을 투입해 봐야 시가총액의 1%도 안 된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정부가 물량을 보유하려면 수백조원어치는 매입해야 할 텐데 도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토지 독과점 현상을 막겠다며 개인과 법인의 택지 소유를 제한하는 내용의 토지독점규제 3법을 발의했다. 1인당 택지 소유 가능 면적을 서울ㆍ광역시는 400평, 기타 시 지역은 600평, 그 외 지역은 800평으로 각각 상한을 두는 내용이다. 상한을 초과해 보유하는 택지는 일정 기간 안에 처분하거나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이미 1999년 택지소유상한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토지 강제 처분은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택지 소유 제한은 주택 공급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 외에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부동산보유세를 지금보다 더 강화하자고 하고, 정세균 전 총리는 공공주택 130만 호 공급을 내걸었다. 죄다 현 정부 정책의 복사판이다. 민간 분야의 주택 공급 확대에 힘을 싣는 주자는 박용진 의원 정도다.
민주당은 부동산에 관한 한 이미 두 번의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주자들 스스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낙제점이라고 인정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과감히 차별화에 나서긴커녕 한술 더 뜨는 반시장 노선을 질주하는 건 당내 경선 때문일까, 아니면 세 번째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일까. 정당이 집권한 뒤에 공약을 추진하는 건 보장된 권리다. 그러니 후보들의 공약을 잘 살펴보자. 공약을 보면 집값이 보인다.